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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그 한 사이클을 마무리짓는 중요한 경기, 성남이 밥상을 차려준 경기, 대구와의 악연을 완전하게 끊어낼 경기. 울산에게 이번 라운드는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던 경기였다. 특히 경기 하루 전, 전북이 성남에게 발목을 잡혀 2:2 무승부를 거뒀다는 소식 때문에 울산 팬들은 더더욱 초조해했다. 1위 자리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였지만, 그러기 위해 울산은 대구를 상대로 승리해야 했다.

  울산 팬들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울산은 대구를 압도하며 1:3의 스코어로 승리했다. 특히 전반전은 본 사람 모두가 울산의 경기 장악력에 감탄했을 정도였다. 대구는 전반전 동안 단 1회의 슛 시도를 기록했다. 그마저도 신창무가 슛한 것을 원두재가 막아내고, 튀어 오른 공을 조현우가 손쉽게 잡아냈던 장면이었다. 세징야와 김대원이 이끄는 위협적인 역습은 힘을 쓰지 못했고, 지난 라운드 멀티 골을 기록했던 데얀은 이번 경기에서 슛 한 번조차 시도하지 못했다.

  울산은 대구를 어떻게 막아냈을까? 경기를 결정지었던 골 장면들도 멋지고 대단했지만, 이번 경기에서 가장 중요했던 승부처는 중원이었다. 이번 리뷰에서는 울산의 중원 자원들이 어떤 활약을 보여주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설영우를 선택했던 이유

 

  지난 라운드 인천전, 울산의 U22 쿼터로 출전했던 이상헌은, 본인의 거취에 대한 루머를 일축하려는 듯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이상헌의 활약은 이번 시즌 U22 쿼터 경쟁에 다시 한번 불을 지폈다. 당분간은 이상헌이 본인의 자리를 지켜내리라 예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번 경기를 앞둔 김도훈 감독의 선택은 설영우였다.

 

 

  설영우는 왼쪽 윙어 포지션으로 선발 출전했다. 그동안 해당 포지션의 굳건한 주전이었던 김인성은 벤치에 앉았다. 울산이 주로 오른쪽으로 공격을 전개했기 때문에, 설영우가 눈에 띄는 장면을 만들어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설영우는 전반전 45분여 동안 왼쪽 측면에서 적절한 판단과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눈에 띄는 활약도 없었지만, 눈에 띄는 실수도 없었다. 무난하고 준수했다.

  울산이 굳이 설영우를 기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대구의 상황을 살펴보면 그 의도를 조금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다.

 

  대구는 이번 시즌 주전 멤버 김우석, 황순민, 에드가를 부상으로 잃었다. 특히 에드가의 부상 공백은 뼈아팠다.

  에드가는 대구 공격 루트의 핵심 축 중 하나다. 단단한 피지컬과 신장, 성실함으로 최전방에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대구의 공격은 김대원의 활력과 세징야의 번뜩임, 그리고 에드가의 굳건함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세 기둥 중에 에드가가 빠졌다. 더 이상 대구의 공격에서 포스트 플레이를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지난 라운드 데얀이 그 자리를 대신해 멀티 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했지만, 데얀과 에드가의 플레이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데얀은 에드가의 역할을 대신하지 못했다.

  이제 대구에게 남은 것은 움직임을 통한 기회 창출뿐이었다. 그리고 세징야의 크랙 기질이나 데얀의 결정력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울산은 이들이 활약할 환경 자체를 철저하게 막아냈다.

 

  울산이 이번 경기를 위해 준비해온 전략은 지난 동해안 더비의 그것과 유사했다. 4-1-4-1 포메이션의 역삼각형 중원으로 중원 장악력을 높이고, 상대 진영에서부터 공격 전개를 막아낸다는 전략이었다.

 

패스를 할 수 있는 선택지마다 마크맨이 붙는다. 심지어 방향 전환마저도 주니오가 길목을 막아버린다.

 

  이를 위해서는 2선 중앙 자원들의 수비적인 능력이 굉장히 중요했다. 이상헌이 지난 경기 공격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수비적인 움직임과 판단이 중요한 해당 역할을 맡기기에는 선수 성향상 불안한 부분이 있었다.

  김도훈 감독은 신진호와 윤빛가람 그리고 원두재를 중원에 기용했다. 이 세 미드필더들과 이청용, 박주호는 이번 경기 중원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으며 대구의 허리를 끊어놓았다. 대구가 울산의 압박을 피해 롱 패스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에드가가 없는 최전방의 제공권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불투이스, 정승현, 원두재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제공권 경합을 이겨내며 울산의 공격권을 되찾는 모습이었다.

 

 

 

신진호의 영향력

 

  울산 팬들에게 이번 경기 가장 눈에 띄었던 선수를 한 명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 신진호일 것 같다. 복귀전에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한 주장 신진호의 존재감은 이번 경기 내내 빛을 발했다.

 

  신진호는 전북과의 9라운드를 치르기 직전에 갑작스러운 이상 증세를 느꼈고, 9라운드 선발에서 제외된 뒤 내리 두 경기를 쉬었다. 신진호의 공백으로 울산은 전북전에서 플랜 A를 가동할 수 없었고, 김기희의 퇴장까지 겹치며 경기를 내줘야 했다. 인천전은 김성준이 신진호를 대신했는데, 결과적으로 대승을 기록하긴 했지만, 경기를 압도했다기엔 아길라르나 무고사에게 기회를 내주는 장면도 많았다.

  그리고 신진호가 복귀했다. 돌아온 신진호의 활약은 모르는 사람이 봐도 눈에 띌 정도였다. 측면, 중앙, 최전방을 가리지 않고 그라운드 위를 누볐다. 본인의 포지션이라는 게 없는 선수 같았다.

  공격 상황에서는 이청용, 윤빛가람과 유동적으로 자리를 바꾸며 가장 효과적인 위치를 찾아 움직였다. 그렇게 움직이면서도 패스 워크는 굉장히 간결했다. 볼 터치 횟수를 최소화하며 빠른 템포의 공격 전개를 이어나갔다. 대구의 수비들은 신진호를 포함한 울산 미드필더들을 제어하지 못했다.

 

"슈파 콤비네이숀!"

 

  선제골 장면도 신진호의 넓은 활동폭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물론, 김태환의 원터치 패스와 이청용의 침투가 매우 좋았고, 김동진이 미끄러지는 행운도 따랐던 골이었다. 하지만 그 장면 직전, 왼쪽 측면의 빌드 업 장면에서 파울성 차징을 당하면서도 패스를 연결시켰던, 그리고 곧장 일어나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으로 침투했던 신진호의 모습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스코어를 0:2로 벌렸던 주니오의 골 장면 또한, 신진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윤빛가람에게 공을 받아 정승원의 태클을 피해낸 다음, 대구 미드필더들의 키를 넘기는 로빙 패스로 주니오의 골을 도왔다. 신진호의 볼 키핑 능력과 판단력, 센스, 킥 정확도를 한 번에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공격 상황뿐만 아니라, 수비 상황에서도 신진호는 본인의 가치를 분명히 했다. 직접적인 수비 기록은 없지만, 많이 뛰며 상대의 패스 선택지를 지웠다.

  이전 경기들과는 다르게, '허리를 끊었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대구의 공격을 틀어막을 수 있었던 것은 원두재의 활약뿐만 아니라, 신진호의 높은 활동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 언성 히어로라고 부르기도 멋쩍은 히어로

 

  전반전, 대구를 가둬버린 전방 자원들의 맨 마킹과 압박이 있었다면, 그 후방에는 원두재가 있었다. 원두재는 후방에 머무르며 빌드 업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수비 상황이면 전방 자원들의 압박 사이로 살아 나오는 공들을 그야말로 '쓸어 담았다'. 신진호, 윤빛가람, 이청용 등이 망설임 없이 전진할 수 있었던 것은 후방에서 원두재가 든든하게 받쳐준 덕분이었다.

 

 

  수비적인 역할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공격 상황에서의 모습이었다. 원두재는 이 경기에서 78회의 패스를 시도해 75회나 성공시켰다. 96.2%에 달하는 성공률이다. 더 대단한 점은 이 중 백 패스 시도가 13회에 불과했다는 점이었다. 원두재는 대구의 압박에도 간결하고 정확한 패스로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전반 29분에 보여준 드리블 시도는 원두재의 판단력과 그것을 이행할 수 있는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대구의 선수들이 패스 길목을 막으며 후방 빌드 업을 방해하려 하자, 원두재는 직접 공을 몰고 전진했다. 주변의 대구 선수들이 원두재를 저지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런 압박에도 원두재는 대구 선수 다섯 명의 이목을 집중시킨 뒤, 정승현에게 안정적인 패스를 연결했다. 좁은 틈이었음에도 정확한 패스였다.

  정승현이 김태환에게 공을 전달한 직후의 장면을 자세히 보자. 원두재가 수비들을 끌고 다닌 덕분에, 후방에서 빌드 업을 진행하려던 윤빛가람, 불투이스, 정승현, 김태환은 마크맨도 없이 자유로운 상태가 되어버렸다. 원두재의 기술적인 능력이 울산의 후방에 얼마나 큰 이득을 안겨주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다.

 

  장신의 단단한 체구에, 패스도 잘하는데, 드리블까지 가능하다니. 심지어 원두재는 97년생이다. 이제야 한국 나이로 24살, 만 나이로는 22살밖에 되지 않았다. 이 선수가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까? 상상하기 두렵다.

  원두재는 이미 울산의 어엿한 주전이다. 출전 여부에 따라 경기 내용의 차이가 느껴질 정도로, 원두재는 울산에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이번 시즌 울산이 최종 목표인 우승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원두재의 활약이 매우 중요하다. 이 젊은, 젊고 든든한 히어로의 플레이를 기쁜 마음으로 즐기도록 하자.

 

 

 

화났어요?

 

  김도훈 감독은 후반 22분, 윤빛가람을 빼고 홍철을 투입했다. 크게 세 가지 정도의 의도가 담긴 교체였다.

  첫 번째로 윤빛가람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서였다. 윤빛가람은 6라운드 성남전 하프 타임 교체 투입 이후부터 단 한 경기도 쉬지 못했다. 수적 열세로 65분 이상을 버텨야 했던 전북전에서도 윤빛가람은 풀타임을 소화했다. 그리고 그다음 경기였던 인천전에서도 마찬가지로 풀타임. 경기를 일주일 간격으로 치르긴 했지만, 누적된 피로가 있을 법했다. 게다가 이번 경기 울산은 전반전부터 높은 지역에서의 수비와 빠른 템포의 움직임을 보여왔고, 윤빛가람 역시 열외는 아니었기 때문에 체력 관리가 필요했다.

  두 번째는 홍철의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지난 인천전에 울산 데뷔전 겸 부상 복귀전을 치르긴 했지만, 아직 완전한 컨디션은 아니었다. 남은 시즌 홍철을 주전 풀백으로 기용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경기 감각을 회복시켜야 했다.

  세 번째 의도는 수비 전략의 변화였다. 대구의 변화에 맞춰 전반전과는 다른 수비 전략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대구는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선수 교체로 변화를 꾀했다. 왼쪽 윙백으로 출전했던 신창무를 빼고 오른쪽 풀백 장성원을 투입했다. 3-4-1-2 포메이션에서 4-3-3과 같은 형태로의 변화였다. 오른쪽 윙백으로 뛰었던 정승원이 중원에 가세했다. 이후 대구는 전반전처럼 내려앉기보다, 중원에서의 주도권 다툼을 시도했다. 이병근 대구 감독 대행의 선택은 어느 정도 유효했다. 전반전 1개의 슛 시도에 그쳤던 대구가 후반전 11개의 슛을 시도했다는 기록만 봐도, 경기 흐름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었다.

  울산 또한 후반전 다른 전략을 준비한 모습이었다. 전반전의 성공으로 리드를 잡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압박의 위치를 하프 라인 아래까지 내렸다. 대구의 날카로운 역습을 경기가 종료될 때까지 막아내려면 선수들의 체력 보존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 전략도 나름대로 유효했다. 울산은 후반 11분 코너킥 상황에서 김동진에게 실점하긴 했지만, 그 장면 외에는 이렇다 할 슛을 허용하지 않았다. (후반 4분 김대원의 슛 장면이 있긴 했지만 유효 슛은 아니었다.)

  그리고 후반 22분, 후반전의 남은 절반을 위해 김도훈 감독은 박주호 시프트를 가동했다.

 

  지난 시즌 말, 파이널 라운드의 대구 원정 경기에서 박주호는 후반 39분에 투입되어 세징야의 맨 마킹 역할을 수행했었다. 당시 세징야가 박주호에게 어찌나 시달렸던지, 감정 섞인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도 있었다. 박주호는 세징야의 감정 표출에도 능청스럽게 대처하며 자신의 역할을 다했었다.

  그리고 이번 경기, 김도훈 감독은 다시 한번 박주호를 세징야에게 붙였다. 대구가 중원을 두텁게 하고 공격적으로 나선 만큼, 세징야에게 패스가 연결될 가능성도 더 커진 상황이었다. 기존의 수비 방식도 좋았지만, 상대의 에이스를 더 확실히 막을 방법이 필요했다.

 

지능적으로 몸을 부딪혀 세징야의 침투를 저지하고, 이후의 패스도 차단해버리는 박주호

 

  박주호는 이번에도 세징야를 훌륭하게 막아냈다. 세징야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플레이를 방해하는 모습이었다. 짜증을 내는 세징야에게 보이는 서글서글한 반응도 여전했다.

 

  박주호를 활용한 에이스 봉쇄 전략은 시도될 때마다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시즌 세징야, 완델손부터 이번 시즌 아길라르, 다시 세징야까지. 박주호의 영리한 수비 덕분에 팀 전체가 부담을 덜 수 있었던 장면들이었다. 울산은 이번 경기에서도, 박주호의 활약에 힘입어 1:3의 스코어를 지켜낼 수 있었다.

 

 

 

16/27

 

똘개이 코끼리는 언제나 사랑입니다.

 

  이번 대구전을 마지막으로, 울산은 리그의 한 사이클을 무사히 마쳤다. 현재 순위는 다시 1위. 하지만 여전히 16경기가 남아있다. 리그뿐만 아니라, FA컵 경기와 재개된 ACL도 있다.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선택과 집중을 해서라도 소기의 목적, 리그 우승을 달성해야 한다.

 

  울산의 다음 라운드 상대는 다시 만나는 강원이다. 지난 맞대결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전반전 내내 고전했던 것을 기억하자. 강원은 여전히 까다로운 상대이다. 좋은 내용과 좋은 결과를 보여주려면 철저하게 준비해야 할 것 같다.

  강원과의 경기 이전에는 경주 한수원과의 FA컵 16강전도 있다. 예상컨대 지금까지 출전 기회를 받지 못했던 선수들이 대거 출전할 것이다. 비욘 존슨, 이동경, 정훈성, 김민덕, 조수혁 등등 '울산이라 출전하지 못했던' 선수들이 너무나도 많다. 부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리그 주전 경쟁에 불을 붙이는 선수가 등장하길 기대한다.

 

 

 

이 글은 제휴 파트너, 울산 팬 커뮤니티 '울티메이트'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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