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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의 이야기다. 시즌 초반 7경기째 이어지던 울산의 무패 행진을 멈춘 것은 성남 FC였다. 울산은 홈에서 승격 팀 성남에게 발목을 잡히며 0:1 패배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올해의 이야기다. 2020시즌 K리그1. 1라운드 대승과 2라운드 대역전극을 보여주며 승승장구하던 울산은 홈에서 승격 팀 부산에게 발목을 잡히며 연승 행진을 마감했다.

 

  어느 스포츠라도 매 경기 승리를 보장 받는 팀은 없다. 어느 경기에도 변수는 존재하고, 연승가도를 달리다가도 거짓말처럼 패배하는 게 축구다. 심지어 울산의 이번 경기 결과는 패배가 아닌 1:1 무승부였다.

  그럼에도 "비길 수도 있지! 진 것도 아니잖아?"라고 말하는 타 팀 팬들과 달리, 울산 팬들은 한숨이 먼저 나온다. 승격 팀에게 승점을 내줬다는 점 외에도, 이번 경기에 오버랩 되는 장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울산은 다득점에서 밀려 우승에 실패했다. 전북과 승점은 같았다는 뜻이다. 지난 시즌 기록했던 10번의 무승부와 5번의 패배 중 단 한 경기라도 결과가 달랐다면 울산은 14년 만의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다.

  마지막 두 라운드, 전북전(1:1 무)과 포항전(1:4 패)의 결과도 뼈아팠지만, 울산 팬들은 우승 실패의 원인으로 그보다 더 앞선 인천전, 경남전을 꼽는 경우가 많다. 울산은 당시 강등권이었던 두 팀과 연달아 3:3 무승부를 기록하며 승점을 놓쳤다.

  물론, 김도훈 감독의 퇴장 징계 기간이었고, 원정 경기였다는 점 또한 변수였다. 하지만, 3골을 넣고도 3골을 실점하며 경기를 놓치는 모습을 연달아 두 번이나 보여줬던 그 여름은 울산 팬들에게 아직까지도 악몽처럼 남아있다.

 

  그래서 울산 팬들에게 이번 부산전의 결과는 '아쉬운 무승부'가 아니라 '또 시작이야?'였다. 약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점. '엉뚱한 곳에서 발목을 잡힌다'는 김도훈 감독에 대한 평가가 또 한번 재현된 점. 단순한 무승부가 아니라 울산 팬들에게 남아있는 불안감과 불신을 건드린 경기였다. '겨우 한 경기 못 이겼다고 태세전환한다'라고 말하기엔 김도훈 감독과 함께하는 동안 울산 팬들이 경험해온 악몽이 너무 많다.

  게다가 이번 경기는 내용 측면에서도, 울산이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 보였던 문제점들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안전과 도전 사이

 

3라운드, 울산은 선발 라인업에 변화를 주었다. 신진호 대신 원두재가, 정승현 대신 김기희가, 데이비슨 대신 정동호가 선발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오래 전부터 언급 해왔지만, 울산 스쿼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수비형 미드필더 자원의 부족이다. 원두재라는 젊은 자원이 있긴 하지만, 이 선수 또한 수비력보다는 빌드 업 능력으로 주목을 받았던 선수였다는 걸 생각하면, 울산의 미드필더 스쿼드 구성이 얼마나 '빌드 업'이라는 테마에 치우쳐 있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다.

  울산은 중원의 부족한 수비력을 가리기 위해, 위험 지역을 점유하는 지역방어 스타일의 수비 전술을 사용한다. 이는 김도훈 감독 부임 초기부터 고수하고 있는 스타일이다. 울산은 상대 공격 상황에 4-4-2 포메이션으로 진형을 바꿔 상대의 전진을 막아선다. 최전방에 위치하는 두 명은 수비 블록 구축보다 상대의 역습 전개 저지를 우선적으로 수행하며, 나머지 여덟 명이 수비 블록를 갖춘 뒤에 수비 진영으로 복귀한다. 이 역할은 보통 공격형 미드필더와 스트라이커가 맡는 경우가 많다.

  이 스타일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최악의 상황을 막는다'는 것을 기조로 삼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수비하는 팀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은 '골문 앞에서의 슈팅 찬스 허용'이다. 상대에게 위험한 위치에서의 찬스를 내주지 않기 위해,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에 좁은 간격의 수비 블록을 구축하고 상대의 진입을 막는다. 팀 단위로 움직이는 수비 방식이기 때문에 약속된 간격만 유지한다면 개개인의 수비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큰 문제 없이 수비에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축구에서는 때때로 개인의 대담한 결정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수비 블록 구성원의 모두가 '괜히 도전해서 위험한 상황 만들지 말고 내 위치나 지키자'라는 생각으로 수비에 임하면, 아무도 태클을 시도하지 않게 된다.

  아무도 태클을 시도하지 않으면 상대가 무리한 슛이나 패스를 시도하지 않는 이상 공수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다. 상대 공격수들이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수비 블록은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수비 블록이 뒤로 물러날수록 수비적인 도전은 더더욱 위험부담이 커진다. 태클에 실패했을 때 내주는 공간이나, 파울을 저지를 수 있는 위치가 더 위험한 지역이 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안전을 추구하다 더 큰 불안함을 짊어지게 되는 꼴이다.

 

 

  상대가 위험 지역에서의 플레이를 포기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수비 블록을 뒤로 무르다 보면 상대적으로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먼 지역은 상대가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는 공간을 내주게 된다. 상대에게 중거리 슛을 잘 하는 미드필더가 있다면 오히려 위험한 장면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런 문제점들은 지난 시즌부터 고질적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라인 좀 내리지 마!"라는 울산 팬들의 오랜 바람은 이미 리그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지적하는 울산의 문제가 되었다.

 

  심지어 부산은 울산의 수비 방식을 역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미드필더들의 측면 활용이 돋보였다. 4-3-3 포메이션의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한 호물로, 박종우, 이규성은 공격 전개 시 측면으로 이동해 중앙의 공간이 발생하도록 유도했다.

  중앙 미드필더들의 활동 폭이 넒어지는 만큼 체력적인 부담이 큰 데다, 중앙 공간을 비우고 측면으로 이동한 만큼 역습 허용의 위험성이 큰 전술 운용이었지만, 부산은 울산과 달리 리스크를 안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모습이었다.

 

이 장면은 측면 공간이라는 지역방어의 단점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원두재가 측면으로 끌려 갔을 때 윤빛가람이 수비 간격을 좁혀주지 않아 벌어진 상황이기도 하다.

 

  울산은 평균적인 수비 성공 위치를 좀 더 높일 필요가 있다. 하프 라인 근처에서의 공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김인성처럼 역습에 최적화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상대 수비가 정비되기 전에 공격이 전개될 수 있도록 더 높은 지역에서 역습이 시작될 수 있어야 한다. 더 높은 위치에서 수비에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도전적인 플레이다. 어느 정도의 안정성을 포기하고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더라도 도전하는 멘털리티가 필요해 보인다.

  물론, 이제와서 수비형 미드필더 자원을 구하거나 수비 전술을 극적으로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차선책을 강구할 수 는 있을 것이다. 김도훈 감독이 종종 보여줬던 4-5-1 형태의 지역방어 전술도 괜찮은 방안일 것 같다. 2선의 숫자를 늘려 선수 간 간격을 더 좁히면 중원의 압박 강도를 더 높일 수 있지 않을까? 2018시즌의 리차드처럼 발이 빠른 편인 김기희를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세우는 것도 중원 장악력을 높이는 대책이 될 수 있다.

 

 

 

오른발잡이 왼쪽 풀백

 

  김도훈 감독은 왼쪽 풀백 포지션에 1, 2라운드를 뛰었던 데이비슨 대신 정동호를 기용했다. 아마도 데이비슨이 나왔을 때 종종 보였던 측면 수비 문제와 부산의 위협적인 측면 자원들을 의식한 변화였을 거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이 선택으로 울산의 공격은 오른쪽 측면에 편향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 경기에서 정동호의 맞상대는 이동준이었다. 이동준은 한국 나이 24세의 어린 나이에도 지난 시즌 13골 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K리그2 MVP 자리에 올랐을 만큼 위협적인 선수다. 측면에서 폭발적인 움직임으로 찬스를 만들어내는 데 능하다.

  정동호는 7살이나 어린 이동준을 상대로 괜찮은 수비력을 보여줬다. 때때로 이동준의 움직임을 놓칠 때도 있었으나, 불투이스의 커버가 가능한 정도였다. 수비 장면의 정동호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울산의 공격 장면에서 정동호는 아쉬운 면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을 선수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엔 그럴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 먼저 눈에 띈다.

 

  보통 오른발잡이 선수를 왼쪽 풀백에 기용한다면, 측면에서 중앙으로 이동하며 중원의 공격 전개를 돕거나, 중거리 슛을 시도하는 등의 장면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정동호는 그런 장면을 자주 보여줄 수 없었다. 이동준이 호시탐탐 역습 찬스를 기다리고 있는 측면을 비우고 중앙으로 이동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오버래핑도 오른쪽의 김태환만큼 시도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과, 앞서 언급한 수비 형태의 문제점이 맞물리며 김인성과 정동호의 왼쪽은 공격 장면에서 영향력을 거의 보이지 못했다. 울산은 대부분의 시간을 오른쪽 측면에 의존하여 공격을 전개해야 했다.

  부산은 오른쪽으로 치우친 울산의 공격마저 잘 막아내었다. 특히 왼쪽 풀백 박준강은 이청용이 공을 잡을 때 마다 따라붙으며 이청용이 제 플레이를 쉽게 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가끔 이청용에게 몰린 수비를 역이용해 김태환이 위협적인 기회를 얻은 장면도 있었지만, 울산은 그 기회를 골로 연결짓지 못하면서 경기를 계획한 대로 풀어내지 못했다.

 

 

 

윤빛가람 딜레마

 

  이번 시즌 울산의 공격 전개는 크게 두 줄기로 나뉜다. 오른쪽의 이청용과 왼쪽의 윤빛가람, 두 선수가 빌드 업의 중심 축이 되어 상대의 압박을 분산시키고 공격을 풀어나간다. 부산전에서는 정동호가 이동준에 묶이는 등 왼쪽 공격 전개가 여의치 않으면서 윤빛가람도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3경기 연속 풀 타임을 소화했을 만큼 울산에게 윤빛가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최근 경기에서 윤빛가람의 수비 실수가 실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수원전, 고승범에게 돌파당하며 첫 실점 장면의 시작점이 되었던 윤빛가람은, 이번 경기에서는 김병오에 대한 압박 타이밍을 놓치며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이청용과 고명진이 돌파당한 것이 1차적인 문제였지만, 윤빛가람이 머뭇거리지 않고 앞을 막아섰다면 김병오의 패스를 쉽게 허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울산의 공격 전개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윤빛가람인 만큼, 계속해서 나타나는 수비 실수는 김도훈 감독에게도 골머리를 썩이는 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윤빛가람의 3선 기용이 한 시즌을 끌고 갈 수 있을 선택이었는지 다시 한 번 고민 해봐야 하지 않을까?

 

 

 

또 다른 승격팀 광주

 

  울산의 다음 상대는 광주 FC. 이번 시즌을 앞두고 부산과 함께 승격한 팀이다. 광주는 현재 3연패의 수렁에 빠져있다. 홈에서의 경기이니만큼 시즌 첫 승점을 얻어내려 노력하리라 예상된다. K리그2에서 광주는 상당히 공격적인 팀컬러를 가진 팀이었지만, K리그1에서의 한계를 느끼고 수비적인 전술을 준비해올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경기 패배했던 것은 아니지만, 울산도 갈 길이 급하다. 선두 자리를 전북에게 뺏겼다. 경기를 마친 뒤 복귀하는 버스 안의 분위기도 상당히 무거웠다고 한다. 분위기 반전을 위해 승리가 필요하다.

  김도훈 감독과 선수들이 잘 준비해 지난 경기의 아쉬움을 씻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울산 팬들의 PTSD와 뿌리 깊은 불신을 다시 신뢰로 돌려놓으려면 보다 안정적인 경기력, 시원시원한 경기력을 보여줘야 한다. 시즌은 아직 많이 남았다. 우리가 다시 당신들을 믿을 수 있게, 부디 좋은 모습을 보여주세요.

 

 

 


덧붙이는 말

 

  본문에서 윤빛가람의 3선 기용을 다시 생각해봐야한다고 언급하긴 했지만, 사실 이 문제가 해결이 어려운 정도의 문제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현재까지 윤빛가람이 관여된 실점 장면을 되돌아보면, 두 장면 모두 공수전환이 일어난 직후, 윤빛가람 주변의 동료 선수들이 1차 지연에 실패하면서 상황이 시작됩니다. 이 때 윤빛가람은 지연을 위해 전진한 동료들보다 뒤쪽에 남아있는데, 1차 저지를 뚫고 살아 나온 상대를 홀로 맞이하면서 실점 장면으로 이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신진호가 염기훈을 막으러 갔을 때(수원전)는 윤빛가람이 너무 섣부르게 고승범에게 달려들었다가 돌파를 당했습니다. 반대로 고명진과 이청용이 김병오를 막으러 달려들었을 때(부산전)는 그 둘 사이를 빠져나온 김병오를 막으러 전진하는 게 옳은가 머뭇거리다 기회를 주는 장면이었죠. 두 장면 모두 역습 상황에서의 판단이 아쉬운 장면이었습니다.

 

  울산은 이 두 실점 장면을 포함해, 이번 시즌 리그에서 총 3실점 중입니다. 나머지 1실점은 측면 수비가 무너지면서 크르피치에게 실점한 수원전이었는데, 윤빛가람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장면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반대로 이야기하면, 역습 지연에 성공하고, 수비 블록이 갖춰진 이후의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윤빛가람의 수비도 별다른 문제 없이 수행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보여준 실점 장면이 허점의 전부라면, 아직 '윤빛가람을 3선에 세워선 안된다'라고 말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윤빛가람을 3선에 세운다고 해서 원두재나 박용우같은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바랐던 건 아니니까요. 역습 상황에서 홀로 남지 않도록 주변 선수들과의 움직임 약속같은 세부적인 사항들을 조금만 조정해도 더 나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홀로 남았을 때, 수비수들과 '상황에 따라 누가 어떤 움직임을 가져갈지'를 약속해두면 지난 두 경기처럼 섣부르게 움직이거나 머뭇거리다 기회를 내주는 장면이 많이 줄어들 수 있겠죠.

  윤빛가람 개인의 부족한 수비력은 원두재의 성장으로 메울 수도 있으니까요. 이제 세 경기 뛰었으니 조금 더 지켜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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