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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시즌 울산은, 특히 시즌 초, 굉장히 멋진 축구를 구사했다. 원두재를 중심으로 신진호의 활동력과 이청용의 창조성이 펼쳐지는 공격 전술은 어느 팀을 상대로든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다. 탈K리그급 축구라는 찬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리그와 FA컵을 모두 마친 지금, 결국 울산이 받아든 성적표는 지난 시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리그를 압도할 줄 알았던 울산은 몇 경기에서 고전하고, 몇 중요 경기에서 무너지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울산 팬들에게 "이번 시즌 울산의 축구에 만족하세요?"라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얻을 수 있을까? 아마 절반 정도는 "그래도 꽤 좋은 축구를 보여줬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느끼고 있지 않을까. 되돌아보면, 이번 시즌 울산은 '경기를 압도했다'라고 이야기할 만한 경기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주도권을 쥐고 있으나 위협적이지 않았던 경기' 혹은 '앞서 있으나 주도권을 쥐고 있지 못했던 경기'가 꽤 많았다.

  울산은 리그에서 4패를 기록했다. 전북에게 3패, 포항에게 1패다. 이 패배 기록들은 더비 매치의 의외성을 생각할 때 억지로나마 납득할 수 있다. 문제는 무승부였다. 리그 우승을 거머쥔 전북은 울산보다 1패가 더 많은 5패를 기록했는데, 무승부는 겨우 3번밖에 되지 않았다. 울산은 부산, 광주, 수원, 대구를 상대로 6무를 기록했다. 과연 이 팀들이 울산보다 더 큰 규모의 팀인가? 더 뛰어난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는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울산은 골키퍼,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 모든 포지션에서 대부분의 상대보다 뛰어난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울산이 상대열위에 놓여있는 팀을 상대로 고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본론부터 말하면, 울산의 전술에는 묘한 어긋남이 있기 때문이다. 공격 전술과 수비 전술의 부조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울산의 주요 수비 전술을 살펴봐야 한다.

 

  울산은 몇 년째 비슷한 수비 전술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지역 방어 전술이다. 4-4-2 혹은 4-5-1 형태의 블록을 수비 진영에 구축하고, 상대의 진입을 저지한다. 전방에서의 강한 압박보다는 위험 지역 점유를 우선시하는 전술이다 보니 자연스레 뒤쪽에 무게 중심이 실린다. 수비 라인이 내려간다. 울산 팬이라면 질색팔색할 이야기지만, 사실 이는 큰 문제가 아니다.

  점유율 축구가 무조건 '좋은 축구'가 아니듯, 수비를 단단히 하는 축구 또한 나쁜 축구가 아니다. 그저 여러 축구 스타일 중 하나일 뿐이다. 유럽 축구의 팀들도 팀마다 다른 전술 기조를 가지고 있다. 비슷한 수준의 팀이 반드시 같은 축구를 구사해야 할 필요는 없다. 울산의, 김도훈 감독의 축구가 단단하고 안정적인 수비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인정 받아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수비 다음의 이야기다. "막은 다음엔 어떻게 골을 넣을 것인가?"

 

  울산과 유사한 수비 방식을 선택한 팀들은 높은 성공률의 득점 루트를 확보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3-2014 시즌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거머쥐었던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빠르고 간결한 역습을 주무기로 삼았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수비가 위험 지역을 점유하기 전에 상대 골문 앞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세 번의 터치 안에 공격 지역으로 넘어가 슛을 마무리짓는다. 이는, 포메이션은 다르나, 지난 시즌 대구가 보여줬던 경기 운영 방식과 유사하다. ATM과 대구는 팀 단위로 약속된 역습 전개와 앞을 바라보는 패스, 그리고 과감한 마무리 시도로 상대의 골문을 위협하곤 했다.

  간결하고 빠른 역습이 힘들다면 세트 피스를 노리는 경우도 있다. 이번 시즌 후반기 인천을 맡아 잔류로 이끈 조성환 감독은 그 좋은 사례다. 수비적일 수밖에 없는 팀, 얼마 남지 않은 시즌 종료. 역습의 합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던 팀의 아쉬운 공격력을 보완하기 위해, 조성환 감독은 부임 직후 세트 피스를 매우 강조했었다.

 

  그러나 울산은 이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역습은 주니오의 드리블과 김인성의 속도 등 개인 능력에 기대는 경향이 짙었고, 그렇다고 세트 피스에서 위협적인 모습을 자주 연출했던 것도 아니었다. 울산의 공격 방식은 지공에 치우쳐 있었다.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는 속도가 느리다 보니, 상대 수비들은 이미 자신들의 위험 지역을 점유한 상태로 울산의 공격을 맞이하곤 했다. 그렇다면 울산의 공격은 지공에 강점이 있을까? 울산의 주전 스트라이커는 주니오였다. 주니오의 플레이 스타일은 타깃형 스트라이커와는 거리가 멀다. 상대 수비 블록 한 가운데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여줄 수 있는 스트라이커가 없으니, 상대가 페널티 에어리어 안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크로스를 시도해도 확실한 득점 기회를 기대할 수 없다. 패스 플레이로 상대 수비 블록을 허무는 것 또한 어렵다. 공중전의 위력이 떨어지는 울산을 상대로, 굳이 울산이 잘 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장단 맞춰줄 바보 같은 팀은 없기 때문이다.

  울산의 공격적인 강점들은 오히려 조직적인 전방 압박 방식의 수비 전술과 어울린다. 공격을 이끄는 모든 선수들이 상대 진영에서 공을 탈취했을 때, 그러니까 상대 수비가 안정화되지 못했을 때 가장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유형들이다. 신진호의 침투도, 이청용의 창조성도, 주니오의 결정력도, 상대가 미처 수비 블록을 구축하지 못한 순간을 찔렀을 때 가장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대표적인 사례가 11라운드 대구전이었다. 조직적인 압박으로 중원을 장악하고, 높은 지역에서 볼을 탈취한 다음 공격적인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김도훈 감독은 그 이후에도 지역 방어의 안정성을 더 선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고르는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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