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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경의 스타일은 울산의 공격에 활로가 되어줄 수 있다. 물론 이론적인 판단에 불과한 만큼 실제로는 어떨지 확언할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이동경이 가진 장점들이 현재 울산의 2선 중앙 포지션에 필요한 것들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동경은 만 21세라는 어린 나이에 A매치 데뷔(2019년 9월 5일 조지아와의 평가전 오른쪽 윙백으로 교체 투입)를 해낸 만큼 잠재력 있는 유망주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잠재력을 여러 가지 장점으로 갈고 닦았다. 이동경의 여러 장점들 중 이번 글에서 다룰 것은, 최근 이동경의 플레이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세 가지 장점: 중거리 슛에서 볼 수 있는 킥력, 모든 2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범용성 그리고 패스 선택의 간결함이다.

우선 킥에 대한 것은 이동경을 조금만 본 사람이라도 대다수 알고 있다. 특히 중거리 슛을 시원시원하게 때려내는 모습은, 이동경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하지만 울산에서는 중거리 슛을 때릴 기회가 많지 않다. 울산을 상대하는 수비들이 내려설 때면, 울산의 2선 중앙 공간까지 빽빽하게 점유하기 때문이다. 특히 백쓰리 전술을 사용하는 팀들은 5-2-3 혹은 5-3-2 형태로, 최후방과 더불어 페널티 에어리어 앞쪽 공간을 지킨다. 일반적으로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활약하는, 이동경 같은 중거리 슈터들이 슛을 시도할 법한 그 지역이다. 그런 수비 블록을 상대로는 중거리 슛 찬스를 만들기 힘들다. 만약 이동경이 중거리 슛 시도를 위해 그 수비 블록 안쪽에 포지셔닝한다면, 동료들에게 패스를 받기조차 힘들 것이다. 수비수들에게 둘러싸인 동료를 향해 패스를 시도할 정도로 과감한 (혹은 멍청한) 미드필더는 울산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동경은 상대 선수들에게 충분히 위협적이다. 이동경 하면 중거리 슛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생각할 정도라면, 상대 수비들도 이를 가장 먼저 의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동경이 골대로부터 조금 먼 위치에 있어도, 상대 수비수들은 이동경에게 패스가 연결될 상황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신경 써야 하는 골칫거리를 하나 더 안기는 것이다. 이런 골칫거리는 가장 다급한 상황에서 순간의 망설임을 만든다. 그 망설임 때문에 울산의 공격수를 놓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두 번째는 소화할 수 있는 다양한 포지션에 대한 이야기다. 이동경은 2선 중앙 포지션 뿐만 아니라 중앙 지향적인 측면 미드필더로도 활용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2년차였던 2019시즌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겠다. 당시 U22 자원이었던 이동경은 김보경과 함께 선발 출전해 중앙과 우측면을 오가며 플레이 하는 모습이 있었다. 이런 이동경의 범용성은 특히 김민준이 뛰는 전반전의 울산에 매우 적합하다.
우선 김민준에 대한 설명이 조금 필요할 것 같다. 포메이션이나 선발 라인업에서 보았을 때 김민준의 포지션은 윙어다. 하지만 실제 경기에서의 평균적인 공격 포지셔닝을 생각하면 김민준의 역할은 힌터제어의 움직임을 이용하는 두 번째 공격수에 가깝다. 물론 우측면에서 김태환과 연계를 이룰 때는 잠시 측면 미드필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김민준이 해당 장면에서 특별히 뛰어난 플레이를 보여준 적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이동준처럼 측면 플레이에 특별한 강점을 보이는 듯한 장면도 드물다. 김민준은 윙어나 미드필더보다 '골 냄새 잘 맡는 공격수'라는 설명이 더 어울린다. 공격수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 덕분에 주목을 받았다고 설명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동경의 범용성은 이런 김민준의 약한 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다. 김민준과 함께 선발 출전했던 최근의 대구전(20라운드 순연경기)과 강원전(23라운드)에서 이미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동경은 중앙에서 머무르며 공격형 미드필더다운 역할을 하다가도, 오른쪽 측면의 하프 스페이스로 자리를 옮겨 김태환을 지원하는 모습이었다. 김민준은 이동경에게 우측면의 연계 작업을 맡기고, 센터백과 윙백 사이 공간으로 침투하는 데 집중했다. 연계와 같은 미드필더 역할보다 김민준이 가장 잘하는 침투, 마무리 등 공격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세 번째는 패스 템포에 대한 이야기다. 필자는 이동경의 간결한 패스 템포가 현재 울산의 2선 중앙 포지션에 가장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다.
시즌 초, 이동경에 대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당시 언급했던 내용 중에, 이동경이 경기 중 주변 상황 파악을 굉장히 꾸준히, 열심히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동경의 그 습관이 드디어 최근의 뛰어난 경기력으로 꽃핀 듯하다. 최근 이동경의 플레이를 보다 보면, '와 이 타이밍에 이런 패스가 들어간다고?' 할 만한 장면들이 많다. 후방의 동료들에게 공을 받아 전방의 동료들에게 연결하는 동작에 군더더기가 없다.
시즌 첫 골을 기록한 강원전은 이동경의 패스 템포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가장 잘 보여준 경기였다. 특히 본인의 골으로 이어졌던 힌터제어를 향한 전진 패스 장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낸다. 원두재가 상대 팀의 패스 미스로 발생한 루즈볼을 잡아두지 않고 이동경 앞 공간으로 밀어놓았다. 이동경은 그 공을 한 번 잡아 자신의 진행 방향에 둔 다음, 두 번째 터치만에 임채민과 신세계 사이로, 그야말로 스루 패스를 찔러넣는다. 그것도 아웃프런트 패스였다는 기술적인 놀라움은 덤이다.
이미 동료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본인의 마크맨이 어디쯤 있는지를 알고 있으니 온더볼 상황에 고민이 없다. 고민이 없는 만큼 템포가 빨라진다. 이렇게 간결한 패스가 2선 중앙에서 매우 뛰어난 정확도로 연결될 수 있다면, 그동안 고민거리였던 울산의 역습('왜 이렇게 뒤쪽에서 볼만 돌리고 있냐?'라는 불만은 역습을 살리지 못해 지공 상황만 이어지기 때문이다.)이 살아날 수 있다.
물론 아무리 상황 인식을 열심히 하더라도, 빠른 템포의 전진 패스는 안정감과는 거리가 멀다. 강원전 이동경의 패스 성공률은 86%. 대구전은 80%에 불과했다. 도전적인 플레이인 만큼 공을 잃을 확률도 높은 것이다. 하지만 2선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뛰는 선수라면 실패가 두렵더라도 도전적인 선택을 해야 옳다. 특히 울산처럼, 만나는 상대마다 2선 중앙 지역을 내주지 않으려 기를 쓰는 팀의, 2선 중앙 포지션이라면 더더욱.
앞서 말했듯이 최근 울산을 상대하는 팀들은 5-3-2 혹은 5-2-3 형태로 중앙을 틀어막는다. 이 지역 방어 전략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역습을 저지하는 게 먼저다. 울산이 수비에 성공하고 역습을 진행하는 타이밍에 상대 미드필더, 공격수들은 울산의 수비수들과 미드필더들을 압박하여 공격수를 향한 패스를 방해한다. 울산은 이 방해를 이겨내지 못하고 공을 뒤로 물린다. 역습 타이밍이 끝난다. 상대는 중앙을 틀어막는다. 이런 상황의 연속이 최근까지 울산의 경기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동경의 패스 템포는 이런 상대의 전략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이동경에게 패스가 연결되면, 압박보다 먼저 공이 방출된다. 그것도 공격수가 침투하는 전방을 향해. 그 순간, 단단해 보였던 수비 전략은 오히려 허점이 된다. 미드필더들의 전진 압박은 오히려 수비수들을 공격에 직접적으로 노출시키고, 최종 수비수들은 '자신이 통과되면 위험하다는' 불안감을 안은 채 뒷걸음질치며 울산의 공격수를 막아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동경의 패스 템포는 울산의 2선에 가장 필요했던 요소였다.

이동경을 지금보다 더 좋은 선수로 만들어주겠다던 홍명보 감독의 말을 기억한다. 올림픽의 경험과 본인의 꾸준한 노력으로, 이제 이동경은 그 '더 좋은 선수'에 가까워진 듯하다. 시즌 초 측면 역습 전술의 대안으로 등장했던, 중앙 집중 전술이 한계를 드러내는 이 시점에, '더 좋은 선수'가 된 이동경의 등장은 울산의 모습을 또 한 번 바꿔놓을 것으로 보인다. 이동경이 이끄는 울산을 지켜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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