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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명진과 바코가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즈음부터, 울산은 지공 중심의 팀으로 기울었다. 지공 중심의 경기 운영 방식이 익숙해졌을 즈음, 뒤늦게 알아챈 것이 있다. 후방 빌드업 메커니즘의 독특함이었다.

 

  김도훈 감독의 2019시즌과 2020시즌, 울산이 후방에서 공격 전개를 시작하는 방식은, 흔히 말하는 '라볼피아나 부분 전술La Salida Lavolpiana'이었다. 상대의 투톱 혹은 원톱과 공격형 미드필더가 우리 팀의 두 센터백을 압박할 때, 수비형 미드필더 한 명이 센터백과 동일선상으로 내려가 '탈출구'를 만들어준다는 전술 개념이다. 두 명의 선수가 동시에 세 명의 상대를 압박할 수는 없다.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공을 안정적으로 소유하며 다음 단계의 빌드업으로 진행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 이 부분 전술의 장점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이 만병통치약처럼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당시 김도훈 감독의 축구에서는 그의 안전지향적인 성향이 종종 드러나곤 했는데, 라볼피아나 형태를 고수하려 하는 점도 그런 부분들 중 하나였다. 특히 주전 선수들의 체력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는 시즌 후반기 경기에서 보수적인 전술 구조 문제가 도드라지는 경우가 잦았다. 그 시기 즈음이면, 대부분의 상대 팀이 울산의 공격 전개 방식을 어느 정도 파악해냈다. 그리고 그 팀들은 울산을 상대할 때 전방 압박의 빈도를 줄였다. 라볼피아나 부분 전술은 전방 압박의 위협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공격 전개를 시작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가 전방 압박을 하지 않는다면?

  전방 압박이 없는 상황에서의 라볼피아나 부분 전술은, 미드필더 한 명을 지나치게 낮은 위치까지 내려놓는 악수가 된다. 후방의 안정감을 바탕으로 미드필드에 진입하기 위한 전략이, 오히려 허리를 얇게 만들어 미드필드 진입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원두재가 불투이스와 정승현 사이로 내려와 라볼피아나 부분 전술의 형태를 만들었지만, 상대 투톱은 전방 압박을 위해 접근하지 않고 중원 지역에 머무른다. 이 상황의 울산은 최후방의 머릿수가 지나치게 많고, 미드필드에는 8번 선수 한 명밖에 없다. 공격 전개 경우의 수를 스스로 줄이는 꼴이다. 자승자박.

 

   이런 상황이라면, 미드필드 진입을 위해 새로운 형태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센터백이 전진해 3선 미드필더 라인으로 올라선다든지, 전방의 2선 미드필드가 3선 미드필더 라인으로 내려온다든지. 상대의 압박이 없는 최후방이 아니라, 미드필드 지역에서 '탈출구'를 만들어줘야 한다. 하지만, 당시(김도훈 감독 재임 시기) 울산에게서는 그러한 유연한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그럼 홍명보 감독의 후방 빌드업 메커니즘은 어떨까? 바코와 고명진이 동시에 선발 출전했을 때, 필자는 '지공 위주, 빌드업 위주 전술로 전환하려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래봐야 후니볼식 라볼피아나의 재현이겠지.' 하며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실제 경기 중 보여준 울산의 후방 빌드업 전략은, 후니볼보다 유연하고, 공격적이고, 그래서 매력적이었다.

 

2021시즌 울산의 후방 빌드업은 기본적으로 2-2-4-2에 가까운 형태였다. 저울톡이라든지, 울티메이트에서 전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이 형태를 어떻게 지칭해야 할지 몰라서 '비대칭 후방 빌드업 구조'라고 말하곤 했었는데, 이게 적절한 표현인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이 구조의 특징은 앞서 라볼피아나 부분 전술에서 '미드필드 라인'이라고 불렀던 3선의 머릿수를 2~3명으로 유지한다는 점이다. 다르게 말하면, 이 구조는 후방 빌드업의 근본적인 목적에 보다 충실하다. 후방 빌드업은 발밑 좋은 수비수, 발밑 좋은 골키퍼를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어떤 형태로 진행되든, 후방 빌드업을 시도하는 제1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미드필드로의 진출이다. 2명 혹은 '3명'의 3선은 더 높은 위치에서의 공 소유에 안정감을 더하고, 보다 앞 선의 공격수들에게 더 다양한 지원을 가능케 한다.

  위 그림을 다시 보자. 미드필드 라인은 중앙의 원두재와 오른쪽의 고명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미드필드 라인의 왼쪽이자 '세 명째' 역할은 누가 책임질까? 이 부분이 이 메커니즘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 '유연함'이다.

 

  이번 시즌 울산 경기에서는 불투이스가 볼을 몰고 전진하는 장면을 굉장히 자주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중에서는 바코의 볼을 빼앗다시피 가져가 상대 골라인 근처까지 전진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지금 이야기할 것은 좀 더 낮은 위치에서의 장면이다.

  울산의 후방 빌드업은 고명진이 포지셔닝하고 있는 오른쪽을 우선적으로 활용하곤 한다. 그러나 오른쪽에서의 전진이 어려울 경우, 울산은 공을 다시 뒤로 물려 공격 방향을 전환한다. 이 때 공을 받은 불투이스가 직접 볼을 몰고 전진해 미드필드 라인의 세 번째 구성원이 된다.

 

 

  상대는 직전까지 (울산 기준) 오른쪽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왼쪽 측면에 공간을 허용한다. 플레이할 공간이 넓으니 고명진 정도의 기술이 아니더라도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안정적인 공격 전개를 이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본래 왼쪽 측면 포지션에서 공을 받으러 내려와야 할 설영우나 바코는 보다 공격적인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

 

  불투이스의 전진이 어려울 때는 어떨까? 설영우나 바코가 이 역할을 맡는 모습도 있었다.

 

설영우가 중앙으로 들어오면, 바코는 전방의 측면 지역을 지역을 선점한다.

 

  설영우는 종종 중앙으로 들어와 빌드업에 가담했다. 이 자리서 직접 전진 패스를 시도하는 장면은 드물었지만, 탈출구 역할은 충분히 수행했다. 설영우가 왼쪽 측면 지역 안쪽으로 들어와 공을 받은 다음, 그동안 수비를 떨쳐낸 중앙의 원두재에게 패스를 내주고 다시 전진하는 장면은 경기 중 꽤 빈번하게 등장했었다.

 

바코가 내려와 빌드업에 가담하면, 설영우가 측면 수비수를 끌고 전진하며 바코가 돌아설 측면 공간을 창출한다.

 

  여기에 때때로 필요한 순간이면 예의 라볼피아나 형태도 활용한다. 이처럼 필자가 확인한 후방 빌드업 형태만 해도 벌써 다섯 가지(고명진을 활용한 전진, 불투이스를 활용한 전진, 바코, 설영우, 라볼피아나)가 넘는다.

  이러한 유기적인 후방 빌드업 메커니즘 덕분에, 울산은 이번 시즌 내내 꾸준한 색깔을, 그것도 공격적인 색깔을 보여주는 팀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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