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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운 경기였다. 경주 한수원은 최선의 준비를 해왔다. 후반전 주전 멤버들을 출전시키게 된 것은 아쉽지만, 90분 안에 결말을 지었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대회 규정이 바뀌면서, 이번 시즌 ACL에 출전하는 울산은 16강부터 FA컵 토너먼트에 참가하게 되었다. 첫 경기 상대는 김해시청을 꺾고 16강전에 올라온 경주 한수원이었다. 경주 한수원은 지난 3년간 연속으로 내셔널리그 결승에 올랐고(2017·2018시즌 우승, 2019시즌 준우승), K3리그에 합류한 이번 시즌에도 현재 2위에 올라있을 정도로 저력이 있는 팀이다.

  울산은 답답한 경기 끝에 2:0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아무리 공이 둥글다지만, 1부 리그 1위 팀이 3부 리그 2위 팀에게 고전하다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어느 팀에게도 내려선 수비를 상대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이번 리뷰에서는 경주 한수원이 어떤 경기를 준비해왔고, 울산이 왜 그 전략을 파훼하지 못했는지를 간략하게 알아보자.

 

 

 

다섯 명의 수비수, 네 명의 미드필더

 

  울산은 네 명의 수비수와 한 명의 공격수를 두는, 4-5-1 계열의 전술을 주로 사용한다. 중원 자원의 숫자를 늘려 짧고 정확한 패스 워크로 중원을 장악하고, 경기를 주도해나가기 위해서다. 선수단 또한 그 목적에 어울리도록, 기술적인 미드필더 위주의 스쿼드를 구성하고 있다.

  짧은 패스 위주의 경기 운영은 높은 패스 성공률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공격권 유지를 돕는다. 전방에 길게 내차는 패스에 비해 팀 전체가 전진하는 속도는 느리지만, 상대에게 공을 빼앗길 확률은 상대적으로 낮다.

 

  경주 한수원은 5-4-1 포메이션으로 낮은 위치까지 내려서서 울산의 전진을 막아내려 했다. 울산은 지난 K리그 1 6라운드 성남전에도 같은 형태의 수비에 고전한 바 있었다.

  5-4-1 형태의 극단적 수비 전술이 4-5-1 계열의 전술을 상대하면, 세 명의 센터백들이 한 명의 공격수를 집중 견제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측면 수비수들은 공격적으로 전진하기보다 자리를 지키며 윙어들을 막아낸다.

  네 명이 나란히 늘어선 2선은 측면 커버가 빠르다. 공격하는 팀이 풀백들의 오버래핑으로 공격을 풀어나가려 해도, 측면 미드필더와 측면 수비수의 협력 수비 때문에 쉽지 않다. 그렇다고 중앙의 공격 전개가 수월한 것도 아니다. 공이 중앙으로 향하면, 네 명의 2선도 중앙으로 이동해 패스 길목을 막아버린다.

 

 

  이렇게 상대가 대부분의 선수를 내려 수비 지역을 점유해버리면, 짧은 패스로 그 틈을 비집고 전진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된다. 미드필더들의 좁은 횡 간격은 전진 패스 길목을 지워버린다. 어렵사리 미드필더 라인을 넘어서더라도, 더 좁은 수비 라인이 기다리고 있다.

  이들이 제한하는 공간 안에서 패스를 주고받으려면, 패스 템포가 굉장히 빨라야 한다. 볼 터치를 한 번만 더 해도 금방 수비수들에게 둘러싸이고, 마크맨이 몸을 부딪쳐 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울산은 본인들이 가장 잘하는 플레이를 시도했다. 짧은 패스를 주고받고, 측면을 활용하며 골을 노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다지 위협적인 플레이가 나오질 않았다. 울산은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 선제골을 터뜨리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로테이션, 어쩔 수 없는 팀워크

 

 

  울산이 전반전에 고전했던 이유를 되짚어보려면, 우선 울산의 선발 라인업을 살펴보자. 울산은 4-1-4-1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나섰다. 울산은 직전 리그 경기를 일요일에 치렀기 때문에 이틀밖에 쉴 시간이 없었다. 로테이션이 필요했다.

  김도훈 감독은 퇴장 징계로 리그 경기에 나설 수 없었던 김기희, 부상 복귀 후 경기 감각을 끌어올려야 하는 홍철과 더불어, 그동안 자주 뛰지 못했던 정동호, 김성준, 정훈성, 이동경, 비욘 존슨을 선발 명단에 올렸다. 그러면서도 코어 라인에는 직전 경기를 뛰었던 조현우, 정승현, 원두재, 윤빛가람을 기용해 전술적 항상성을 꾀했다.

 

  그러나 로테이션의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오랜만에 경기에 투입된 선수들의 폼도 문제였지만, 서로 간의 호흡이 잘 맞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 대 일 패스를 원하는 듯했고, 누군가는 스루 패스가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가뜩이나 공간이 좁아서 패스 플레이의 템포를 끌어올려야 했는데, 서로 다른 판단들을 하다 보니 공을 상대에게 헌납하는 장면들이 많아졌다.

  백쓰리를 상대하는 팀 전체의 움직임도 비효율적이었다. 최전방의 비욘 존슨이 세 명의 센터백에게 집중 견제를 받지 않도록, 주변의 선수들이 하프 스페이스를 활용하며 센터백들의 시선을 끌어줘야 했다. 그러나 김성준의 침투는 조금씩 늦었고, 정훈성은 측면 지향적으로만 움직였으며, 이동경의 중앙 이동은 정동호의 오버래핑이 없어 효과가 떨어졌다. 전반전 내내, 비욘 존슨을 향한 공이 경주 한수원의 차지가 되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답답함만 가득 남긴 채, 전반전이 종료되었다.

 

 

 

후반전, 교체로 만들어낸 변화

 

  김도훈 감독은 하프 타임 직후, 주니오와 이청용을 투입했다. 이 교체는 주전 멤버의 투입이기도 했지만, 백쓰리를 효과적으로 상대하기 위한 전술적 변화이기도 했다. 주니오는 김성준보다 침투 움직임이 뛰어나고, 이청용은 정훈성보다 중앙 지향적인 움직임에 일가견이 있다.

  4-4-2 포메이션으로 전환되면서 중앙을 활용한 빌드 업은 힘들어졌지만, 투톱의 영향으로 경주 한수원의 수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니오는 폭넓은 침투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수들을 괴롭혔다. 후반 8분과 9분, 오른쪽 측면으로 전개된 역습이 주니오와 비욘 존슨을 거쳐 이동경의 기회가 되는 장면들은, 전술 변화의 효과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들이었다.

 

정동호→이청용→주니오→이동경

 

(이청용→)주니오→비욘 존슨→이동경

 

  전술 변화는 역습 상황뿐만 아니라 지공 상황에서도 효과를 보였다. 양 측면의 풀백이 높이 전진하고, 미드필더들까지 상대 진영으로 넘어와 상대 수비를 공략할 때, 투톱과 양 측면의 윙어들은 중앙에서 움직이며 수비수들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비욘 존슨 홀로 세 명의 센터백을 상대해야 했던 전반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제 경주 한수원의 수비수들은 비욘 존슨, 주니오, 이동경, 이청용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했다.

 

 

  그리고 후반 29분, 비욘 존슨의 결승골이 터졌다. 김태환이 교체로 들어간 지 2분 만에 기록된 골이었다. 오른쪽 측면에서 김태환이 찍어 차듯 올려준 크로스 패스를 비욘 존슨이 헤더로 결정짓는 모습이었다.

  2선 위치로 내려온 비욘 존슨의 패스가 시작이었다. 비욘 존슨은 김태환에게 공을 내준 뒤, 재차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침투했다. 이 과정에서 비욘 존슨을 마크하던 서명식이 존슨의 움직임을 놓치고 말았다. 김태환이 크로스 패스를 시도한 순간, 센터백 정택훈과 측면 수비수 이승민은 주니오를 의식해 비욘 존슨에게 빠르게 붙을 수 없었다. 그 덕분에 비욘 존슨은 센터백 이용과의 일 대 일 경합만 이겨내면 되었다. 김도훈 감독이 투톱 전술로 전환한 의도가 여실히 반영된 장면이었다. 

 

 

 

 

그럼에도 백업 멤버들은 소중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주전 멤버들이 세 명이나 투입되고 나서야 결승골이 터졌다. 피상적으로 생각한다면 백업 멤버들의 경기력을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 답답한 점이 있었다 하더라도, 조금만 너그러이 생각해준다면 어떨까. 이번 경기 선발 출전했던 백업 멤버들은 대부분, 이번 경기가 정말 오랜만의 선발 출전이었다. 여러 경기 합을 맞춰온 주전 멤버들과 비교하며 비판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게다가 누누이 말하지만, 작정하고 내려선 팀을 뚫어내는 것은 원래 쉽지 않은 일이다.

  백업 멤버들의 경기력은 곧 장기적인 레이스의 힘이다. 시즌은 길고, 변수는 많다. 당장 이번 경기로 시작한 FA컵 일정도, 리그 레이스에는 크나큰 변수다. 주전과 백업의 격차를 줄여야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다.

 

  특히 이번 경기 정동호에 대한 비판은 너무 과하다. 정동호는 본인과 교체된 김태환이, 들어오자마자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혹자는 '정동호는 다 막히더니, 김태환은 한 방에 어시스트'라며 이번 경기에 대한 정동호의 기여를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이번 경기 정동호의 플레이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전반전 오버래핑을 자제하는 모습이 공격을 어렵게 만들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정동호 나름의 노련한 선택이었다. 경주 한수원은 빠른 공격수들을 활용해 울산의 후방 공간을 노려왔다. 섣부르게 전진하다 역습 찬스를 내주는 것은 가능한 한 피해야 했다. 선제 실점이라도 당했다간, 경주 한수원은 더 단단하게 내려앉을 것이 뻔했다.

  크로스 실패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다. 몇 번인가 차단을 당하는 모습이 인상을 남겨서 그렇지, 괜찮은 크로스 패스 시도도 많았다. 단지 중앙의 공격수들이 제공권 다툼에서 밀리며, 센터백들이 걷어냈을 뿐이다. 후반전에는 침투하는 이청용을 향한 전진 패스도 여러 번 연결시키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정동호의 포지션 경쟁자 김태환은 현재 리그 전 경기 풀타임을 소화 중이다. 11경기에 모두 출전해 단 한 번도 교체된 적이 없다. 김태환이 리그 최고 수준의 풀백인 것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만에 하나 김태환이 나올 수 없을 때는 정동호가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정동호를 깎아내리는 것보다는, 그가 빠르게 경기 감각을 회복할 수 있길 기원하는 것이 아닐까?

 

  장기적으로 이청용의 백업 멤버가 될 것으로 보이는 이동경은 이번 경기 드디어 시즌 첫 풀타임(FC 도쿄전은 종료 직전 이상헌과 교체)을 소화했다. 그리고 시즌 첫 골을 기록했다. 드리블로 상대를 속여낸 뒤 오른발 감아 차기로 골망을 흔들었다. 원래 오른발잡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멋진 기술이었다.

 

 

  비욘 존슨과 이동경, 로테이션으로 출전한 두 선수가 득점에 성공했다는 점 또한 확실히 고무적이다. 두 선수 모두 이번 골로 자신감을 이어가, 리그에서도 보여줄 멋진 활약을 기대해보자.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

 

  울산의 FA컵 8강전 상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5라운드(8강) 대진 추첨은 오는 21일 오후 1시에 예정되어 있다. K리그1 소속 팀들만 남은 만큼, 치열한 8강전이 예상된다.

 

  울산의 다음 리그 경기는 강원전이다. 강원은 지난 라운드 광주를 상대로 4골을 기록하며 4:1 대승을 거뒀다. 부산전 패배를 딛고 반등을 이뤄낸 모양새다.

  최근 언론에서 '울산은 강원에 강하다'라는 말로 울산 팬들을 현혹하고 있다. 명심해야 한다. 설레발은 금물이다. 강원은 강한 팀이다. 심지어 강원은 FA컵 경기에서 로테이션을 가동하고도 8강 진출에 성공했다. 결국 7명의 주전이 출전했던 울산보다, 근소하게나마 체력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선두를 유지하려면 최선을 다해 승리를 노려야 한다. 부디 다가오는 주말에도 흔들림 없이, 울산이 결과를 만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글은 울산 현대 팬 커뮤니티 '울티메이트'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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