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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즌을 진행해 나가다 보면, 내용보다 결과가 중요한 순간이 있다. 이번 강원전이 그런 순간이었다. FA컵 주중 경기의 여파와 여름 무더위를 예고하는 듯 어마어마한 습도의 날씨. 이런 환경에서 90분간 '좋은 내용'을 유지하기란 힘든 일이다. 선수들이 평소보다 빠르게 지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갈 만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강원은, 주중 경기에 로테이션 멤버들을 출전시켰다. 이번 경기에 출전할 김승대, 고무열 등 대부분의 주전 선수들이 체력을 아낄 수 있었다. 조현우, 정승현, 원두재, 윤빛가람이 주중 경기 풀타임을 소화했던 울산과 비교하면, 경기 전부터 강원이 유리한 고지를 점한 듯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산은 적절한 시점에 승부수를 성공시키며 승점 3점을 모두 챙겼다. 같은 시간 전북은 인천에게 덜미를 잡히며 승점 1점밖에 얻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울산에게 더더욱 달콤한 결과였다. 우승 경쟁을 펼치고 있는 두 팀의 승점은 이제 3점 차. 한 경기만큼의 격차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김도훈 감독의 승부수

 

대구전 라인업과 다른 점은 교체 명단의 민동환, 김기희뿐이다. 대구전 교체 명단에는 서주환과 김민덕이 이름을 올렸었다.

 

  울산은 대구전과 똑같은 선발 명단으로 이번 경기에 나섰다. 선수들의 면면뿐만 아니라,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대구전 때와 유사했다. 울산의 전방 자원들은 높은 지역에서부터 강원의 공격 전개를 방해했다. 공을 가진 선수 근처의 패스 길목을 막아, 점진적인 공격 작업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패스할 곳을 잃은 상대가 전방을 향해 긴 패스를 시도하면 원두재, 불투이스, 정승현이 그 공을 가로채는 모습이었다.

 

 

  그 수비 전략을 기반으로 울산은 전반전 초반부터 경기를 주도해나갈 수 있었다. 강원이 계속해서 공을 잃고, 울산이 그 공을 잡아 공격 작업을 펼치는 장면들이 한동안 이어졌다. 빠른 템포의 패스 워크로 공격을 풀어나가는 모습 또한 대구전과 흡사했다. 울산의 선수들은 경기장을 넓게 쓰며 상대 수비를 흔들고, 유기적인 침투 움직임으로 기회를 만들었다.

 

 

  마침내 울산은 앞서 나갈 기회를 만들어냈다. 전반 26분, 박주호가 얻어낸 PK였다.

  그 장면의 시작은 이청용으로부터였다. 김태환이 멋진 움직임으로 수비라인을 파고들었고, 이청용이 절묘한 로빙 패스로 타이밍 맞게 패스를 연결했다. 김태환이 어려운 공을 다이렉트로 주니오에게 연결해냈고, 또한 좋은 타이밍에 그 곁을 쇄도해 들어오던 박주호의 움직임도 좋았다. 그 일련의 과정들이 매우 아름다웠다. 강원의 수비 실수로 얻어낸 PK라기보다는, 울산의 선수들이 만들어낸 PK라고도 말해야 할 것 같은 장면이었다.

  이 PK를 주니오가 결정지으며, 울산은 1점 차로 경기를 리드하게 되었다. 전반전부터 주도권 다툼에 치열하게 임한 끝에 얻어낸 결실이었다.

 

 

  여기까지가 김도훈 감독의 승부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울산은 강원에게 체력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선제골 이전까지처럼 주도권을 쥐고 경기를 풀어나가려면, 중원 자원들의 넓고 지속적인 움직임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윤빛가람과 원두재는 불과 4일 전에 풀타임을 소화했다. 아무리 질 좋은 휴식을 취했더라도, 체력적인 한계가 어느 순간에 찾아올지 알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이른 시간, 팀 전체가 각각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동안에 승부를 결정지어야 했다. 그래서 울산은 이번 시즌 손꼽힐 정도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던, 대구전의 라인업과 전략을 다시 한번 준비해왔다. 그리고 전반전이 마치기 전에 선제골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전반 40분 즈음부터 울산은 수비 방식을 바꿨다. 더 이상 높은 지역에서의 수비를 시도하지 않고, 주요 수비 위치를 조금씩 낮은 지역으로 내렸다. 3장의 교체 카드를 고려하더라도 최소한 8명은 풀타임을 소화해야 했다. 최후방 공간을 점유하는 지역 방어와 두세 명의 공격수가 참여하는 역습은, 후방 자원들이 뛰어야 하는 거리를 최소화해주었다. 90분 동안의 체력 관리를 위한 전술적인 선택이었다.

  물리적으로 뛸 거리를 줄이는 대신, 수비수들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정신적인 피로를 감내했다. 울산이 낮은 위치에 수비 블록을 형성한 만큼, 중원 지역의 주도권은 강원이 쥐고 있었다. 수비 라인에서 중원을 향해 걷어낸 공을 울산 선수가 차지할 수 있는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전반전과 정반대로, 울산이 공을 계속 잃고, 강원이 공격권을 이어나가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울산은 강원의 파상공세에도 실점하지 않았다. 특히 80분대부터 원두재를 센터백으로 내린 5-4-1 형태의 울산은, 지난 수요일 울산이 고전했던 경주 한수원을 보는 듯했다.

 

 

 

울산의 철벽남들

 

  경주 한수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생각해보자. 지난 수요일, 울산은 결국 경주 한수원의 수비를 뚫어내며 2:0으로 승리했다. 왜 강원은 울산처럼 울산을 뚫어내지 못했을까?

  경주의 수비 블록을 상대하던 울산에는 비욘 존슨이 있었다. 비욘 존슨은 196cm의 신장을 무기로, 웬만한 센터백들과 겨뤄도 높이 싸움을 이길 수 있다. 실제로 울산은 비욘 존슨의 헤더 골로 경기를 결정지었다.

  하지만 강원의 공격진에는 그만한 높이가 없었다. 최전방 자원의 많은 활동량과 순간적인 침투 움직임을 중시하는 김병수 감독의 전술 특성상, 강원은 타깃맨 스타일의 공격수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반대로 울산의 수비진에는 제공권 다툼에 특출난 센터백들이 있다. 정승현과 불투이스는 강원의 공격수들을 상대로 수차례 크로스 패스를 차단해내며 본인들의 특출남을 뽐냈다.

 

이현식의 크로스 패스를 따내는 정승현

 

신광훈의 낮은 크로스마저 잘라내는 불투이스

 

  특히 이번 경기에서는 불투이스의 집중력이 매우 돋보였다. 제공권을 다투는 상황뿐만 아니라, 페널티 에어리어 안을 향해 시도되는 여러 형태의 공격들을 안정적으로 차단해냈다.

  K리그 데이터 포털의 기록에 따르면, 불투이스는 4회의 태클 중 3회를 성공시켰고, 8회의 클리어링(상대가 공격 중인 상황에서 볼을 걷어내는 행위), 8회의 차단(상대 선수가 소유한 볼이나 패스를 막아 루즈볼로 만드는 수비 행위)을 기록했다. 태클과 차단은 강원의 신광훈과 함께 가장 많은 횟수이고, 클리어링은 양 팀을 통틀어 가장 많은 횟수의 기록이다.

  불투이스의 포지션이 센터백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불투이스의 수비 성공이 기록됐던 그 모든 장면 장면들이 곧 울산의 위험 상황 직전의 장면들이었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불투이스의 활약 덕분에, 울산은 수많은 실점 위기를 넘어 클린 시트를 지켜낼 수 있었다.

 

넌 못 지나간다!

 

어림도 없다, 암!

 

  단단한 수비를 보여준 것은 센터백들만이 아니었다. 울산의 단단한 수비벽 뒤에는 K리그 최고의 골키퍼 조현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강원은 빽빽한 울산 수비 블록 사이에서도, 종종 좋은 패스로 수비들의 후방 공간을 노렸다. 하지만 그때마다 조현우가 좋은 타이밍에 튀어나와 공을 가져갔다. 김승대, 김지현 등 침투에 능한 공격수들이 공을 쫓았지만, 조현우의 판단은 늦은 적이 없었다.

 

  이번 경기 사람들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장면의 주인공 또한 조현우였다.

  90분, 이현식의 슛이 원두재의 무릎에 맞았다. 굴절된 공이 향하는 방향은 골문 왼쪽 구석이었다. 조현우는 이현식의 슛 모션에 맞춰 오른쪽으로 한 걸음 이동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10m도 안 되는 거리에서 공의 방향이 전혀 바뀌어버렸다. 웬만한 선수들이라면 반응이 늦거나, 반응을 해보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동점골을 헌납하고 말 장면이었다.

  그러나 조현우는 역동작이 걸린 상황에서도 몸을 날려, 이 공을 골문 밖으로 쳐냈다.

 

공이 굴러갈 때 머리를 감싸쥐고 좌절하려던, 불투이스의 멋쩍은 팔이 킬링 포인트

 

  말 그대로 '승점 2점을 지켜낸 슈퍼 세이브'이었다. 경기 종료까지 3분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동점골을 허용한다면 동점 스코어 그대로 경기가 종료될 확률이 높았다. 울산에게는 다시 한번 결승골을 노릴 시간도 체력도 없었다. 이 슈퍼 세이브 덕분에, 울산은 강원과의 어려운 경기에서 무사히 승점 3점을 잡아낼 수 있었다.

 

  우승을 노리는 팀에게는 '꾸역승'이 필요하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결과는 더 중요하다. 화려한 4승 1패보다 답답한 5승이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것이 축구이기 때문이다. 이번 경기는 그 '꾸역승'의 뉘앙스가 강한 경기였다. 보는 사람은 조마조마했지만, 울산은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차분히 되돌아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울산의 의도대로 흘러갔던 경기가 아닌가? 전반전부터 울산의 승부수가 적중했다. 그리고 이후의 상황들도, 울산은 결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수비적인 전술을 사용해 의도대로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번 경기는 울산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즐기는 자를 이길 수는 없을까?

 

  울산의 다음 경기 상대는 최근 뛰어난 선전으로 3위까지 올라온 상주 상무다. 상주는 이번 시즌 결과와 상관 없이 강등이 확정된 팀이다. 시즌 초반만 해도 선수단의 동기 부여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 섞인 평가를 들었지만, 상주는 김태완 감독의 지휘 아래 그야말로 '결과를 걱정하지 않는 행복 축구'를 하고 있다. 아는 자, 좋아하는 자, 즐기는 자 중 제일은 즐기는 자라고 했던가. 입을 모아 축구를 즐기고 있다고 말하는 상주의 선수들은, 전북전과 대구전을 포함해 12경기 중 7승을 쌓으며 결과까지 만들어냈다.

  그야말로 리그의 생태계교란종이 되어버린 상주다. 상주가 뿌리는 고춧가루에 맞지 않으려면, 울산은 지난 개막전의 대승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다시 한번 철저하게 경기를 준비해야 한다. 즐기는 자의 자신감보다 더 큰 간절함으로 노력한다면, 즐기는 자를 넘어설 수도 있지 않을까? 다음 라운드 울산의 선전과 좋은 결과를 또 한차례 기대해보자.

 

 

 

이 글은 울산 현대 팬 커뮤니티 '울티메이트'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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