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K리그 2020, 커밍 쑨!

 

  2020년 초봄,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잃어버렸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다. 학교들의 개학이 미뤄지고, 온갖 행사며 시험일정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일상을 잃은 것은 K리그 팬들도 마찬가지다. 주말이 되면 경기장을 찾을 생각에, 원정을 떠날 기대로 한 주를 버텨내던 축덕들은 삼일절이 지나고 벚꽃이 졌음에도 축구장에 갈 수 없는 이 상황이 낯설다. 이런 상황이 두 달째 지속되고 있지만, 아직도 주말이 되면 뭘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
  너무나 다행히도, 국내 방역 상황이 나아지면서 축덕들의 주말 일정은 조금이나마 채워질 예정이다. 드디어 5월 8일 전북과 수원의 경기를 시작으로 K리그가 개막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시즌 승격에 성공한 광주와 부산. 감독이 바뀐 대구, 성남, 인천. 그 외에도 응원하는 팀이 새 시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해 하는 팬들이 많을 것이다. 그 중에는 운 좋게도, 이미 이번 시즌 한두 차례의 공식 경기를 확인할 수 있었던 팬들도 있다. ACL 출전 구단을 지지하는 팬들이다.
  울산 또한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기 직전에 ACL 그룹 스테이지 1차전을 치렀다. 1:1 무승부를 기록한 FC 도쿄와의 경기는 분명 여러모로 아쉬움이 있었지만, 2020시즌을 앞둔 울산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경기였다.

 



2020시즌을 맞이하는 울산

 

  2019시즌 우승을 놓친 울산은 우려와 다르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얻었다. 모기업의 지원 축소와 함께 선수단 붕괴, 엑소더스를 겪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현재 울산의 선수단은 지난 시즌보다 더 좋아졌다는 평까지 듣고 있다.
  타 팀 팬들의 질투를 살 만큼 성공적인 겨울 이적시장을 보낸 울산이다. 하지만 이런 울산의 행보에도 불안한 부분은 있다. 바로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이다.

  울산의 미드필더 포지션은 과포화 상태다. 믹스와 박용우가 팀을 떠났지만, 신진호와 김성준이 남아있다. 여기에 고명진, 윤빛가람, 원두재가 추가로 영입되었다. 4-2-3-1 포메이션을 쓰는 울산의 기존 전술을 생각할 때, 5명, 최소 4명의 주전급 자원이 두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문제는 이들 중 수비형 미드필더라고 분류될 만한 선수가 원두재 뿐이라는 점이다. 공격적인 성향의 선수들, 그것도 체력이 걱정되기 시작하는 30대 베테랑들 사이에서 밸런스를 맞출 선수가 너무나도 부족하다. (김성준은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스타일이지만, 제 폼을 찾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김도훈 감독도 이런 공수 불균형 문제를 고민했던 듯하다. 프리시즌 중에 치렀던 호찌민 시티FC와의 친선경기에서 울산은 백쓰리 전술을 실험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시즌 첫 공식 경기였던 FC 도쿄(이하 도쿄)전에서도 울산이 꺼내든 것은 백쓰리 카드였다.

 



백쓰리,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나?

 


  경기 전 구단 공식 SNS와 중계 방송을 통해 발표된 포메이션은 4-1-4-1이었지만, 실제 경기장에서 울산이 보여준 모습은 3-4-3에 가까웠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할 것처럼 보였던 원두재는 정승현과 김민덕 사이에 머무르며 센터백 역할을 수행했다. 측면 미드필더로 보였던 비욘 존슨과 김인성은 주니오와 동일 선상에서 포워드처럼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이 백쓰리 카드가 도쿄전만을 위한 전술이었는지, 2020시즌의 주력 전술로 자리매김할 것인지는 한 경기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백쓰리 전술은 울산의 현 상황에 꽤 이상적으로 부합한다.

  팀의 유일한 수비형 미드필더 원두재는 이전소속팀 아비스카후쿠오카에서 지난 시즌 29회의 리그 경기를 소화했고, 그 중 23경기는 백쓰리의 센터백 포지션으로 기용되었다.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울산의 센터백 자원은 백포 전술을 쓰기 아까울 만큼 많다. 불투이스, 윤영선, 정승현, 김기희, 김민덕에 원두재까지 더하면 백쓰리로도 더블 스쿼드 구성이 가능할 정도다.
  울산이 백쓰리 전술을 사용하면 '빈약한 수비형 미드필더 자원'이라는 스쿼드의 약점을 가리면서 센터백 자원의 과포화 현상을 해소할 수 있다. 또한, '수비형 미드필더'였다면 필연적이었을 원두재의 과부하도, 그를 '센터백 자원'에 포함시킨다면 피할 수 있다.
  도쿄전에서 울산은 수비 라인을 상당히 끌어올린 뒤, 백쓰리를 횡으로 최대한 넓게 배치시켜 빌드 업의 기점으로 삼았다. 윙백들은 높은 위치까지 전진해 윙어를 대신했다. 후방 빌드 업을 거쳐 윙백에게 공이 전달되면 최전방 공격수들이나 중앙 미드필더들이 이들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공격을 전개하는 모습이었다.
  윙백을 중심으로 경기장을 넓게 활용하는 빌드 업 전략은 도쿄를 상대하는 데에 꽤 괜찮은 효과를 보였다. 특히 오른쪽 측면의 정동호는 전반전 내내 날카로운 크로스로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크로스바를 강타했던 비욘 존슨의 슛 또한 정동호의 발끝에서 시작했던 장면이었다.

  울산의 백쓰리 전술은 신선했고,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울산의 경기 내용이 좋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울산은 이 경기에서 백쓰리 전술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도, 전술적인 문제를 포함한 몇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문제점①: 높은 측면 의존도

 

  지난 2019시즌 구단 역사상 첫 J1리그 우승을 거머쥘 뻔했던 도쿄는 4-4-2 포메이션의 단단한 수비와 역습을 구사하는 팀이었다. 역대 최고성적이기도 했던 아쉬운 준우승 이후, 도쿄는 아다일톤과 레안드로를 영입하며 4-3-3 포메이션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진형이 바뀌었으나, 팀의 수비력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었다. 도쿄는 울산과의 경기에서 단단한 수비력을 보였다. 역삼각형으로 배치된 미드필더들은 공격적으로 날카로웠지만, 수비적으로도 매우 뛰어났다. 적절한 위치선정과 압박으로 중원을 단단하게 틀어막는 모습이었다.
  3-4-3 포메이션을 사용했던 울산은 중원 다툼에서 도쿄에 크게 밀렸다. 산술적으로만 봐도 2 대 3의 싸움이었다. 중원 다툼을 위해서는 다른 포지션의 가세가 필요해 보였다.


  센터백의 경우, 도쿄의 세 공격수들을 막느라 쉽게 전진하기 힘들었다. 도쿄는 역습이 주무기인 팀이다. 심지어 그 역습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최전방 포지션을 모두 외국인 선수로 기용했다. 센터백이 함부로 전진하다 역습을 당하게 되면, 그 공백은 치명적일 것이 뻔했다. 원두재가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로 올라오지 못한 것에는 이런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센터백의 가세가 불가능하다면, 최전방 공격수들이 내려와 미드필더진을 돕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울산은 전반전 중에 수차례 이 방법을 시도했다. 주니오가 2선 근처로 내려와 빌드 업에 참여하고, 원 터치 플레이로 공격을 풀어나가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하지만 이 방법도 중원의 열세를 해결해주진 못했다. 도쿄는 2·3선의 간격을 좁혀 수비지역에서의 압박 강도를 높게 유지했다. 주니오가 내려오더라도 공간이 협소하고 압박이 심한 중앙에서는 템포 조절에 어려움이 있었다.
  중원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울산은 윙백을 최대한 터치라인 가까이에 배치하고, 공격수들을 전진시켜 도쿄의 수비 라인을 밀어내려 노력하기도 했다. 시도는 좋았으나 효과는 크지 않았다. 결국 다시 중앙의 2 대 3 매치 업으로 귀결되는 꼴이었다.

  그래서 울산이 선택한 공격 루트는 결국 측면이었다. 윙포워드가 중앙과 측면을 오가야 하는 4-3-3 포메이션의 특성상, 도쿄의 측면은 중앙만큼 두텁지 못했으니 올바른 공략법이기도 했다.
  문제는 울산의 공격이 지나치게 측면에 치우쳐, 중앙에서의 공격 전개는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는 점이었다.


  측면 공격만 계속되자 당연히, 도쿄에서도 측면 수비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중앙 미드필더들이 측면을 커버하고, 윙포워드들은 그 동안 내려와 중앙 미드필더의 빈 자리를 커버하도록 수비 전술을 수정했다. 합리적인 역할 분담이었다. 최전방 브라질리언 트리오의 수비 범위를 줄여주는 대신, 그들로 하여금 공격에 더 힘을 쏟게 하는 의도가 엿보였다.
  그리고 후반 18분, 도쿄는 브라질리언 트리오의 합작으로 선제골을 기록한다.

 


문제점②: 고질적으로 느려 터진 대처

 

  선제골을 허용한 뒤, 울산은 전술을 수정했다. 정동호와 고명진을 교체하며 포메이션을 3-4-1-2로 바꿨다. 신진호와 고명진이 더블 볼란테를 이루고, 이동경이 2선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윙포워드였던 김인성은 정동호가 뛰던 윙백으로 자리를 옮겼다. (동점골을 노려야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김인성과 데이비슨은 1선까지 전진해 윙어처럼 움직였다. 거의 3-2-1-4에 가까운 형태였다.)
  조금 더 이른 시점에 변화를 가져갈 수는 없었을까? 도쿄는 이미 후반전 초반부터 울산의 측면 공격에 대한 대응책을 보여주고 있었다. 측면 공격이 막히기 시작했다면, 다시 중앙에서의 공격 전개를 보강해 상대 수비를 흔들어야 했다. 하지만 울산은 실점 이후에야 변화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기 중 상대의 변화에 대응이 서툴다는 점은, 시즌 막판까지 우승 경쟁을 이어갔던 2019시즌에도 내내 김도훈 감독을 따라다녔던 비판이었다. 그토록 수많은 울산 팬들을 허망하게 만들었던 시즌을 마무리한 뒤, 프리시즌을 지나 새 시즌이 시작되는 시점까지도, 김도훈 감독의 약점은 가려질 기색이 없다.

  울산의 대처가 뒤늦었던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도쿄는 동점이 되자, 곧 공격수 아다일톤을 빼고 중앙 미드필더 미타를 투입했다. 상식적으로, 적어도 상대 선수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가 이뤄졌다면, 이 교체는 누가 봐도 후방에 무게를 싣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시점이 후반 41분이었다. 실제로 도쿄는 교체 이후 쓰리톱을 투톱으로 전환, 상황에 따라 4-4-2 혹은 5-3-2의 형태로 움직였다.
  울산의 즉각적인 대응은 보이지 않았다. 바쁜 모습을 보여야 하는 쪽은 울산이 아닌가? 시즌 첫 공식 경기였고, 홈 개막전이었다. 하지만 울산은 하다 못해 원두재를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로 전진시키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울산은 별다른 변화 없이 경기를 운영했다.
  그리고 7분여가 흐른 후반 48분, '그 교체'가 이루어졌다.

"이거, 지금 들어가면 군 면제되는 거 아니죠?" "이걸 (시간 끌어서) 비길 생각이었나 보다!"

 

  인터넷 개인방송으로 이 경기를 중계하던 어느 축구해설위원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울산의 두 번째 선수교체였다. 이동경이 나오고 이상헌이 그라운드에 들어갔다. 그리고 경기가 종료되었다.
  도쿄의 선수교체 이후 7분 동안 경기가 끊김 없이 진행됐던 것도 아니었다. 울산이 마지막 남은 교체 카드를 쥐고 고민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김도훈 감독은 정말 이 경기를 무승부로 마무리 짓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대처가 어처구니없을 수준으로 늦었던 걸까?

 

 


세 달 동안 달라졌으리라 믿을 수밖에

 

  울산이 도쿄전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좋지 못했다. 변화는 있었지만 허점이 많았고, 오래도록 지적받던 문제점도 고쳐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필자는 또 한 번 울산에 속아주려 한다. 세 달이나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흐른 만큼 더 나아진 모습일 거라 믿는다. 다른 울산 팬들도 아마 대부분 같은 마음일 거라 생각한다.
  다가오는 토요일. 5월 9일 오후 2시. 울산은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상주와의 리그 개막전을 치른다. 안전을 위한 무관중 경기이다. 선수들에게도 어색한 분위기일 것이고, 우리에게도 어색한 광경이겠지만, 무사히 리그를 시작하고 또 계획대로 진행해 나갈 수 있길 기원한다. 김도훈 감독도 계약 마지막 해를 영광스럽게 마무리할 수 있길 바란다. 물론, 우승하더라도 재계약은 결사반대지만.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