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경기에 대한 리뷰를 시작하기 전에, 솔직하게 밝힌다. 필자는 꽤 오래 김도훈 감독의 사퇴 혹은 경질을 외쳐왔다. 리뷰에서는 점잔 빼는 척 언급을 자제 해왔지만, 동해안대담 시리즈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필자가 평소 김도훈 감독에 대해 어떤 스탠스를 취해왔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리뷰에서 필자는 김도훈 감독을 비판하지 않으려고 한다. 김도훈 감독은 이번 경기에서 감독이 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최선을 다 했다. 적어도 필자가 봤을 땐 그랬다.

  앞으로 이어질 리뷰는, 김도훈 감독이 광주전에 무엇을 했고 왜 그것을 비판할 수 없는지에 대한, 필자의 보기 드문 김도훈 감독 실드 글이다.

 

 

 

왜 원두재가 아니었나?

 

 

  울산은 1·2라운드의 좋았던 분위기를 되찾기 위해서였는지, 다시 한번 윤빛가람과 신진호를 3선에 함께 세웠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수비 불안을 지적받았던 조합이다. 경기가 끝난 뒤, 역시나 원두재를 선발로 기용해야 했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광주의 공격 형태를 생각하면 사실 이 조합은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광주는 울산을 상대로 초반부터 상당히 내려선 모습을 보여주었다. 광주의 압박 위치는 하프 라인에조차 미치지 않았다. 수비 진영에 움츠려 울산이 공격 지역까지 올라오도록 내버려 두었다. 최전방에 선 펠리페 또한 홀로 압박하기 보다 체력을 아끼며 공 가진 선수를 견제하는 움직임에 그쳤다.

  공이 광주 진영으로 넘어오면 그때부터 광주의 압박이 시작되었다. 필드 플레이어 대부분이 내려서있었던 만큼, 수비 지역의 어느 곳에서도 수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공을 빼앗으면 그 즉시 펠리페에게 전달했다. 펠리페는 중앙에서 공 소유를 돕는 동시에, 양 측면의 두현석과 엄원상이 전진할 시간을 벌었다. 측면 자원들이 전진한 뒤에는 간결한 연결로 측면을 최대한 활용했다.

 

전반 11분, 엄원상의 골로 이어진 광주의 역습 전개

 

  전반 11분에 터진 엄원상의 선제골은 광주가 준비해온 공격 전술이 그대로 적중하는 장면이었다. 김인성에게 향하던 불투이스의 패스를 박정수가 끊어냈다. 공은 펠리페에게 연결되었고, 펠리페는 그 공을 다시 엄원상에게 전해준 뒤 엄원상이 중앙으로 치고 달릴 수 있도록 측면으로 움직였다. 엄원상은 공을 몰고 울산의 진영을 가로질러 결국 골을 성공시켰다.

  울산 입장에서는 펠리페의 슛을 몸을 던져 막아냈는데, 그 공이 하필이면 엄원상의 발 앞으로 튀었던, 불운이 따른 실점이었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다. 운이 좋았으니 0.5점만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이로써 울산은, 3경기 연속으로 상대의 역습에 당하며 선제 실점을 허용하게 되었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 '역시 수비가 불안하니 원두재를 쓰는 게 옳았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경기 전체의 양상을 생각하면 원두재를 기용하는 것이 무조건 옳다고 볼 수는 없었다.

  광주는 경기 초반부터 선 수비 후 역습 스타일의 경기 운영을 노렸다. 펠리페를 제외한 대부분의 선수가 수비 블록을 형성하며 내려앉았다. 그것은 곧, 울산이 광주 진영에서 공격을 시도할 때마다 9명 이상의 수비수를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울산은 센터백들을 제외한 모든 선수가 공격에 가세했다. 최전방에 홀로 남아있던 펠리페에 대한 견제는 불투이스가 맡았다.

  이런 상황에서 수비형 미드필더가 한 명 더 후방에 남는 것은 수비력 낭비나 다름없었다. 후방에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 셋이 남게 되면 전방은 7 대 9의 싸움이 되는 탓이다. 게다가 광주는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을 두지 않는 4-3-3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나섰으니, 수비형 미드필더의 필요성이 더더욱 애매했다.

  3선에 필요한 역할이 후방에 머무르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니라면, 수비적인 원두재보다 공격적인 신진호를 기용하는 것이 더 적절한 선택이었다. 엄원상의 골 장면과 같은 상대의 역습은 공격적인 경기를 위해 짊어져야 할 리스크였다. 경기 초반에 그 역습으로 실점하게 된 점은 안타깝지만, 울산의 3선은 풀 타임을 소화하며 그 외의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처럼 전반적인 경기 내용과 팀에 필요했던 역할을 고려한다면, 김도훈 감독이 내세운 3선 조합은 분명 비합리적인 선수 기용이 아니었다.

 

 

 

왜 주니오를 교체했나?

 

  울산의 일방적인 공격 양상으로 이어지던 후반 30분, 김도훈 감독은 주니오를 빼고 고명진을 투입했다. 주니오 밑에서 섀도 스트라이커처럼 뛰고 있던 박정인이 최전방으로 올라가고, 교체 투입된 고명진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는 모양새였다.

 

  K리그 데이터 포털에 따르면, 이 날 주니오는 6회의 슛을 기록했다. 이는 양 팀의 선수들 중 가장 많은 횟수였다. '동점 상황에서 가장 결정력이 좋은, 그리고 가장 많은 슛을 시도하던 선수를 빼다니!'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세부적인 기록을 살펴보면 주니오의 슛 시도는 대부분 전반전에 쏠려 있었다.

  주니오는 전반전에만 다섯 번의 슛을 시도했다. 교체되어 나오기 전까지, 후반전에 주니오가 시도한 슛은 단 한 번이었다.

 

후반 24분, 후반전 주니오의 유일한 슛

 

  후반전 주니오는 광주의 빽빽한 수비에 둘러싸여 제대로된 슛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울산의 노련한 스트라이커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쉬지 않았다. 계속 수비를 끌고 다니며 공간을 만들려 노력했고, 기회가 날 때마다 좋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열심히 움직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울산이 공격하는 상황이 길어져 갔다. 펠리페, 두현석 등 광주의 역습에 앞장섰던 선수들이 지치면서, 수비 후 걷어낸 공의 소유권이 계속 울산에게 돌아오는 양상이었다. 울산의 공격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주니오 또한 계속 움직여야 했다. 상대 수비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최전방마저 움직여주지 않으면 중앙에서도 측면에서도 상대의 위험지역으로 진입할 공간이 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경기들보다 주니오의 체력 소모가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일주일 후에 예정된 울산의 5라운드 경기는 여느 경기보다 중요한 포항과의 라이벌전, 동해안 더비였다. 대체 자원 비욘 존슨이 아직 적응을 완벽하게 하지 못한 상황에서, 주니오의 선발 출전은 필수불가결했다.

  슛을 거의 기록하지 못하고 있는 후반전 상황에서 언제 찾아올 지 모르는 한 방을 위해 주전 스트라이커의 체력을 소모할 것인가, 아니면 더비 매치를 대비해 남은 체력을 온존할 것인가. 김도훈 감독은 후자를 택했다. 필자는 이 선택을 비합리적이라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 비욘 존슨이 아닌 고명진이었나?

 

  주니오를 뺀 이유에 대해서 납득했다 하더라도, 아직 몇가지 의문이 남을 수 있다. 왜 스트라이커 주니오의 교체 상대가 미드필더 고명진이었어야 했나, 그리고 왜 서브 명단에는 비욘 존슨이 없었나.

 

  주니오 대신 고명진을 투입한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이 경기 울산의 서브 명단을 다시 한번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울산은 조수혁, 김기희, 정동호, 원두재, 고명진, 이청용, 박정인을 벤치에 앉혔다. 이들은 언급된 순서대로 골키퍼, 센터백, 풀백,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측면 미드필더, 공격수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

  필드 전지역을 커버할 수 있는 서브 명단은 김도훈 감독의 의도가 엿보인다. 윤빛가람-신진호의 3선 기용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울산은 경기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나설 작정이었다. 전반전에 최대한 많은 골을 기록한 뒤, 후반전은 동해안 더비를 대비해 주전 선수들의 체력을 안배하려는 의도였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전반전이 1:1로 끝나면서, 계획이 틀어지고 말았다.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김도훈 감독이 꺼내든 첫번째 교체 카드는 이청용이었다. 이상헌을 불러들이고 그 자리에 이동경을 배치한 뒤, 오른쪽 윙 포지션에 이청용을 기용했다.

  후반 20분이 지나도 역전골이 나오지 않자, 이번엔 이동경을 빼고 박정인을 투입했다.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이동경보다 스트라이커 성향이 짙은 박정인은 2선 중앙에서 조금 더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리라 기대했다.

  마지막 교체로 주니오를 불러들일 당시, 울산의 벤치에는 조수혁, 김기희, 정동호, 원두재, 고명진이 남아있었다. 이 중 공격형 미드필더 고명진은 가장 공격적인 카드였다.

 

  상대가 내려설 것으로 예상했다면 제공권 다툼이 가능한 장신 공격수를 기용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타깃형 스트라이커 스타일은 아닐지라도, 비욘 존슨의 신장이라면 크로스 상황에서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욘 존슨은 출전 명단에 들지 못했다. 교체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김도훈 감독은 왜 비욘 존슨 대신 박정인을 교체 자원으로 선택했을까?

 

Dan Croydon(K League United 울산 담당)에 답변하는 Hasse Johnsen은 비욘 존슨의 아버지다.

 

 

  비욘 존슨은 부산전, 김문환에게 태클을 당한 뒤 무릎을 부여잡았다. 약 2분간 의료진에게 치료를 받은 뒤 다시 일어나 남은 15분여의 경기를 소화했지만, 대미지가 없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부상 정도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비욘 존슨을 당분간 명단에서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김도훈 감독의 선택을 비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김도훈 감독은 이제 막 부상 복귀해 R리그를 소화하기 시작한 이근호 대신 서브 명단의 U22쿼터를 채울 수 있는 어린 공격수 박정인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은 아니었다.

 

 

 

김도훈 감독은 변화를 택했다

 

와이셔츠를 입었던 부산전과 달리 구단 저지를 입고 벤치를 지킨 김도훈 감독

 

  김도훈 감독은 광주전에 변화를 보여주었다. 이청용 대신 이동경을 선발로 내세웠던 점, 평생 쓰지 않을 것 같았던 U22 교체 자원을 경기에 투입했던 점은, 필자가 김도훈 감독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과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안전과 밸런스를 중요시하던 이전 경기와 달리, 상대의 수비 진형을 무너뜨리기 위해 센터백마저 과감히 공격에 가담시키는 전술 운용 또한 놀라운 점이었다. 불투이스의 호쾌한 중거리 슛은 그런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센터백이 저 위치까지 올라와 있다니!

 

  비록 광주 원정에서 승점 3점을 가져오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보수적이던 감독의 변화는 반갑다. 물론 승격팀과의 2연전에서 승점 2점밖에 가져오지 못했다는 점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필자는 결과의 아쉬움보다 변화에 대한 기대를 더 크게 느끼고 있다.

 

  울산의 다음 상대는 앞서 언급했듯, 지긋지긋한 악연의 포항이다. 지난 시즌 김도훈 감독은 포항에 1번 이기고 3번 졌다. 심지어 마지막 패배는 울산 팬들의 '최악의 악몽' 순위를 뒤바꿔놓은 경기였다. 과연 변화를 시작한 김도훈 감독은 지난 시즌과 다른 더비 매치 성적표를, 지난 시즌과 다른 시즌 성적표를 받아들 수 있을까? 중요한 경기를 앞둔 울산의 변화를, 분위기 반전을 기대해보자.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