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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첫 리그 경기. 3개월만의 홈 경기이니만큼 팬들과 함께였다면 좋았겠지만, 안전을 위해 무관중으로 치러진 경기였다. 울산은 아쉬워할 홈 팬들을 위해 다양한 준비를 해온 모습이었다.

  우선, 경기 시작 전부터 구단 공식 유튜브 채널의 라이브 방송으로 UHTV LIVE를 진행했다. 단복을 맞춰입은 선수들의 출근모습이나 경기 준비 과정 등, 직관을 했더라면 볼 수 있었을 장면들을 전파로나마 전달하며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오랜만에 보는 강진영 장내 아나운서와 연블리 이상연 MC의 모습도 반가웠다.

  경기 중에도, 상황에 맞춘 서포터들의 응원 소리를 준비해 중계에 현장감을 선사했다. 특히 경기가 마칠 즈음 울려퍼진 '잘가세요'는 전광판의 서포팅 영상과 어우러져 더더욱 특별했다.

 

  울산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경기였다. 2019시즌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올시즌은 다르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 게다가 지난 2월 치른 도쿄전의 경기력이 그다지 좋지 못했으므로, 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팬들을 돌려놓기 위해선 좋은 경기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울산은 상주를 상대로 4:0 대승을 거두었다.

 

 

 

이게 된다고? 윤빛가람과 신진호의 3선 조합

 

 

  울산은 4-2-3-1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나섰다. U22쿼터 이상헌, 이청용의 첫 출전 등 특기할 점이 많은 선발 라인업이었지만, 그 중에도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중원 조합이었다.

  리그가 개막하기 전 이번 시즌 울산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포 전술을 사용한다면 원두재가 3선에 기용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팀의 유일한 수비형 미드필더 원두재가 기용되지 않는다면 팀의 공수 밸런스가 무너져 역습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판단이 전제였다. 그리고 이 판단은 사실 매우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상주전 김도훈 감독이 꺼내든 카드는 윤빛가람과 신진호의 더블 볼란테였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팬들은 두 공격적인 미드필더들의 성향을 떠올리며 불안해 했다. 하지만 실제 펼쳐진 경기에서 울산은 그런 불안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윤빛가람과 신진호는 지난 시즌 믹스와 박용우가 보여줬던 역할 분담과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였다. 전진하는 믹스와 그 뒤를 받치는 박용우로 나뉘었던 지난 시즌 울산의 3선 조합과는 달리, 윤빛가람과 신진호는 역할을 번갈아 맡으며 밸런스를 유지했다. 두 선수의 성향상 부족한 수비력은 센터백의 전진으로 보완했다.

 

전진 수비하는 불투이스(4번)와 그 자리를 커버하는 윤빛가람(10번). 커버를 위해 뛰어내려가는 윤빛가람을 영상의 오른쪽 아래 구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상대 역습 상황에서 울산 진영으로 공이 넘어오면 센터백이 튀어나가 상대를 1차적으로 저지하는 장면이 자주 연출되었다. 센터백이 비운 자리는 풀백들이 좁혀 서거나 미드필더가 내려가 메우며 수비 간격을 유지했다. 이런 방식의 역습 저지는 상대가 롱 패스를 시도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불투이스나 정승현이 전진하며 공중볼 다툼에 가세했고, 대신 윤빛가람이나 신진호는 후방으로 내려가 빈 공간을 커버했다.

  1차 저지 이후에도 상대 공격권이 이어지는 경우, 센터백들은 원래 자리로 복귀하고 미드필더들이 다시 앞으로 나와 수비 라인을 보호하는 형태로 바뀐다. 역습 찬스를 저지하는 동안 대부분의 선수들이 수비 진영으로 복귀했으니, 3선의 수비력을 보완할 수 있는 4-4-2 지역 방어로 전환하는 것이다.

 

  울산은 전술 운용과 커버 플레이로 3선 조합이 가진 수비적인 약점을 최소화하고 공격적인 강점을 살릴 수 있었다. 물론 울산이 위험한 상황을 전혀 맞이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조현우라는 든든한 수문장이 있으니 걱정을 덜 수 있다. 극단적인 상황에는 원두재를 투입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김도훈 감독이 준비해온 다양한 대책이 앞으로의 시즌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어떤 멍청이가 주니오 욕했냐?

 

네... 그 멍청이가 접니다. 하루에 한 번씩 브라질 방향으로 머리 박고 사죄하겠습니다. (출처: https://www.fmkorea.com/2561089067)

 

  리그 개막 연기가 울산에겐 약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주니오는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활약했다. 라운드 종료 후 발표된 MOM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번 경기 주니오의 활약은 단순히 공격 포인트 갯수만으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난 시즌 말미에 보여주던 둔한 모습과는 다르게, 넓은 활동범위가 눈에 띄었다. 역습 상황에서 1차적인 빌드 업을 돕기 위해 중원까지 내려와 공을 받아주었으며, 측면의 김인성·이청용과 포지션을 바꿔가며 플레이하는 모습도 있었다.

 

 

  측면 자원이 마크맨를 달고 중앙 혹은 후방으로 이동하면, 주니오는 그 빈 측면 공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이청용이 수비수를 끌어낸 오른쪽 측면으로 파고든 것이 첫 골 장면이었고, 김인성이 후방으로 내려온 왼쪽 공간으로 침투해서 만들어낸 것이 이상헌의 세번째 골을 도운 장면이었다. 오프사이드 라인을 절묘하게 깨고 위협적인 상황을 만들어낸 침투 장면들은 '내가 알던 주니오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지난 시즌 상대 수비에 고립되고, 오프사이드 트랩에 고전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주니오와 교체되어 들어온 비욘 존슨의 유효 슛

 

  로테이션 가능한 백업 자원의 존재 또한 주니오의 활약을 도왔다. 울산은 2020시즌을 앞두고 노르웨이 국가대표 스트라이커 비욘 존슨을 영입했다.

  후반 34분 주니오와 교체되어 들어왔던 비욘 존슨은 비록 이 경기에서 슛 1회를 기록하는 것에 그쳤지만, 해당 장면에서 상대를 벗겨내고 슛까지 연결했던 플레이는 상당히 유려했다. 슛 또한 유효슛으로 기록되었다.

  비욘 존슨이 리그 적응을 마친다면 주니오의 페이스메이커 혹은 파트너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니오 입장에서도, 백업 자원 덕분에 체력 부담을 덜고 짧은 시간 더 활발하게 뛸 수 있다. 울산의 두 스트라이커의 공존과 경쟁이 기대된다.

 

 

 

이청용! 이청용! 이청용! 이청용!

 

  이번 경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청용을 빼놓을 순 없을 것 같다. 볼턴 원더러스, 크리스탈 팰리스, 보훔을 거쳐 11년만의 K리그.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청용의 복귀전'이라는 키워드는 수많은 축구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청용의 나이를 들며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청용은 그런 걱정들이 무색하도록 첫 경기부터 본인의 클래스를 입증했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경기장에서 단연 돋보이는 선수는 이청용이었다. 상대가 높은 위치에서부터 압박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청용에게는 여유가 엿보였다. 그만큼 이청용의 플레이는 간결했고, 미리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부지런함도 돋보였다. 활동량은 나이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청용은 2선의 오른쪽 윙으로 출전했지만 오른쪽에 머무르지 않고 중앙과 최전방을 자유롭게 누볐다. 그러면서도 수비 상황에서는 후방까지 내려와 수비에 가담하는 성실함까지 보였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공간을 만들고, 또 공간으로 뛰어 들어간다.

 

 

  이청용 덕분에 울산의 선수들은 상당히 수월하게 경기를 풀어갈 수 있었다. 특히 이청용이 측면 자원이라는 점에서 이런 효과는 더욱 긍정적이다.

  U22쿼터로 활용될 울산의 젊은 선수들은 2선 중앙이 제 포지션인 경우가 많다. 아직 미숙한 선수들이 가장 압박이 심한 자리에 서야 하는 격이다. 하지만, 측면에서 이청용이 상대 수비의 견제를 짊어져 준다면 상대적으로 중앙에 대한 수비 집중도가 옅어질 수 있다. 이청용의 존재로 이상헌, 박정인과 같은 유망주들의 부담까지 덜어줄 수 있는 것이다.

 

  경기를 본 모두가 이청용에 대해 감탄한 만큼, 이번 경기 이청용의 활약은 대단했다. 하지만, 울산이 이청용에만 의존해 경기를 풀어나간다면 지난 시즌과 다를 게 없을 것이라는 점은 약간의 걱정거리로 남아있다.

  지난 시즌 울산은 김보경을 혹사시키다시피 기용했었고, 김보경이 막히기 시작하면서부터 경기력이 떨어졌었다. 이번 시즌 울산이 이전과 다른 성적표를 받아들기 위해서는, 이청용이 없을 때도 경기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전례없이 두터운 스쿼드가 주어진 만큼, 이번 시즌 김도훈 감독의 전술적 역량을 기대해 본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하는 이유

 

  상주전 대승은 울산에게 쾌조의 스타트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안심할 수는 없다. 상주전에서 볼 수 있었던 장면은 상당히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상주는 울산을 상대로 내려서기보다 과감한 전방 압박을 보여주었다. 2020시즌 성적이 관계 없이 강등이 확정된 것이 모험적인 상무의 플레이 스타일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 덕분에 울산은 역습 상황마다 상주의 뒷공간을 활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울산의 다음 상대는 수원이다. 심지어 원정 경기를 떠나야 한다. 수원은 전북과의 1라운드 경기에서 내려선 수비 위주의 경기 내용을 보였다. 전북은 안토니스의 퇴장으로 수적 우위를 점했음에도 수원의 수비를 뚫어내는 것에 고전했다. 후반 38분, 코너킥 상황에서 이동국의 헤더 골이 터지지 않았다면, 홈에서 수원에게 승점을 내줄 뻔했다.

  만약 수원이 다음 울산전에도 유사한 전술을 준비해 나온다면, 울산은 상주전과 다른 국면을 맞이할 가능성도 있다. 상대의 수비 블록을 뚫어낼 만한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리그에서 손꼽히는 스쿼드를 만들었고, 시원시원한 경기력으로 첫 경기 승리를 기록했다. 상당히 괜찮은 모양새로 첫 걸음을 뗀 셈이다. 과연 울산은 이번 시즌 염원을 이룰 수 있을까? 다음 경기, 그리고 이어질 시즌 동안 김도훈 감독의 능력이 더없이 중요해 보이는 울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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